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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五歲) 초등생-권순긍 세명대 명예교수, 전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2022년 08월 15일(월) 23:00
세조 정변에 맞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방외인(方外人)으로 평생을 유랑했던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다섯 살 어린 나이에도 한시를 능히 지을 수 있었다 한다. 그런데 신동이라는 소문이 세종의 귀에까지 들어가 왕이 어린 김시습을 직접 보고자 한 일이 있었다. 야사(野史)에 의하면 세종은 도승지 박이창을 시켜 김시습의 글재주를 시험했다 한다. 박이창이 먼저 “동자의 학문은 흰 학이 푸른 하늘가에서 춤추는 것과 같도다.(童子之學 白鶴舞靑空之末)”하자, 김시습은 서슴지 않고 “임금님의 덕은 누런 용이 푸른 바다 가운데서 꿈틀거리는 것 같습니다.(聖主之德 黃龍飜碧海之中)”고 대구(對句)를 달았다. 감탄한 세종은 김시습에게 나이가 들어 학문이 이루어지면 불러다 크게 쓰겠노라고 약속했다. 이 일로 김시습은 당시 나이에 따라 ‘오세’(五歲)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졌다. 설악산 오세암(五歲庵)도 자신의 별칭을 따서 지은 것이라 한다. 하지만 김시습은 더러운 세상을 경멸하는 ‘오세’(傲世)로 불리길 바랐다.

뜬금없이 왜 김시습 애기냐 하겠지만, 요즘 문제가 되는 ‘오세’ 초등학교 입학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서다. 김시습은 나면서 8개월부터 글을 알았을 정도로 천재성을 지녔으며 ‘시습’(時習)이란 이름처럼 “때가 되면 스스로 글을 익혔다” 한다. 요즘 아이들도 김시습처럼 그렇게 스스로 깨우치기에 입학 연령을 낮추려고 한 걸까?

오세 초등 입학 정책의 사연은 이렇다. 대통령 업무 보고 때에 교육부 장관은 디지털이 중심이 되는 4차 산업혁명기에 맞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현행 만 육세에서 만 오세로 낮추면 좋겠다는 보고를 했고,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즉각 시행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한다. 그 정책의 적절성 여부는 검토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초등 입학 연령을 한 살 낮추었을 때 수반되는 여러 문제들은 차치하고라도 과연 학부모나 교사 등 교육 주체들과 국민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정책을 덜컥 결정한 것이다. 게다가 초등 입학 연령을 낮추는 문제는 대통령의 교육 공약이나 국정 수행 과제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중대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데 공론화 과정을 무시한 졸속(拙速) 행정이 아니고 무엇이랴!

교육의 문제는 온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갖는 핫 이슈다. 가족 중에 자식이나 손자나 동생 등 누구라도 교육과 관계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정권들은 항상 교육 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입시 정책을 이리저리 바꿨던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런데 학제(學制)의 개편은 입시보다 더 큰 문제다. 교육의 근간 자체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 정책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지 않던가!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비등하자 대통령실은 여론에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그냥 물러서지 않고 교육부에 TF팀을 꾸려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초등 입학 연령 하향의 반대 여론은 무려 98%에 이르고, OECD 국가 중 초등 입학 연령을 만 오세로 하는 나라는 10%도 안 된다. 거의 모든 국민이 반대하고 있는 셈인데도 검토하라는 여지를 남기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야기를 좀 바꿔 보자. 삶의 질이 높다는 선진국 노르웨이에 동생네가 살고 있다. 간호사인 제수씨가 오래 전 의료 이민으로 가서 터를 잡고 아이와 남편을 데려간 것이다. 조카는 다섯 살에 건너갔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한국에서처럼 경쟁심이 발동해서 그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복습과 예습을 해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학부모를 호출해서는 당신들이 혹시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시킨 거냐며 으름장을 놓더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고 했더니, 만약 그러면 ‘아동 학대’라며 아이들에게 절대 공부에 대한 부담을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이들은 잘 놀기만 하면 된다고 하며. 어릴 때부터 영어 회화에 수학 과외에 선행학습으로 혹사당하는 한국의 어린이들에 비하면 정말 천국 같은 얘기다.

그런데 대통령의 지시처럼 만 오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좋은 상급 학교에 가기 위한 경쟁 체제로 들어서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교육에서 중요한 ‘창의성’은 사라지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반복 학습만이 남게 된다. 이래서 어찌 국가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교육부는 입학 연령을 낮추려는 시도보다 어떻게 아이들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지를 정책의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는 일이다.

1957년 한국동화작가협회에서 제정한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에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초등 입학 연령 하향 정책은 ‘오세’(五歲)가 아니라 세상과 여론을 업신여기는 ‘오세’(傲世)의 태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