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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리 듣는 밤-김창균 빛고을고등학교 교장
2022년 08월 03일(수) 00:30
한 시인은 어린 시절 여름밤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멍석을 깔고 / 밖에서 자도 좋은 시절이 되었습니다. // 할아버지 아버지 순례 막둥이 모두 / 머리를 나란히 하고 먼 개구리 소리를 듣습니다. // 개굴 개굴 개굴 / 개개개 개개! / 개-굴 개-굴 // 지난해엔 형님과 같이 누워 듣던 / 개구리… // 손을 들면 / 별하늘이 닿을 듯한 따뜻한 밤입니다.” (유정 ‘개구리 소리 듣는 밤’)

매캐한 쑥불 연기 위에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개구리 울음소리 들려오던 여름밤은 정감이 어려 있었다. 멀리 떠난 가족이라도 있다면 무논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개구리의 합창엔 애틋함과 그리움의 흔적도 배어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흥부의 경우는 스물다섯의 자식이 늘 배가 고파 ‘어매 밥’을 제각기 외쳐대는 소리에 ‘비 오려 할 제 방죽에 우는 개구리 우는 소리 같다’고 넋두리하였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내 논 물꼬에 물 들어가는 것만큼 보기 좋은 것이 없다’는 옛말이 반증하듯, 자식들의 주린 모습에 걸치는 개구리 소리에 흥부는 오죽이나 처량했을까.

‘개구리 소리도 들을 탓’이라는 속담처럼 여름밤을 깨우는 개구리 울음소리도 마음에 따라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그뿐이겠는가. 무심히 듣던 개구리 소리가 순간의 계기로 막연한 상념의 벽을 틔우기도 한다.

소설가 김승옥은 ‘무진기행’에서 “마치 수많은 비단조개 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비빌 때 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그 개구리 울음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라고 하였다. 청각 이미지가 시각 이미지로 전환되는 가운데서 안타깝게 멀기만 한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새삼 깨닫는 계기로 다가온 것이다.

개구리 소리에서 문득 다가온 인식의 전환은 시인 한하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갸 거겨 / 고교 구규 / 그기 가. // 라랴 러려 / 로료 루류 / 르리 라.” -한하운, ‘개구리’

나병(한센병)으로 버림받아 유랑하는 시인의 길가에도 개구리 소리는 지천이었겠다. 그런데 아마도 학교 앞을 지나는 순간, 교실이 떠나갈 듯 울려대는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에서 건강했던, 소외되지 않았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소환되었을 것이다. 물과 뭍 양쪽에서 산다는 양서(兩棲)류의 특징을 살려 ‘가’와 ‘라’ 두 글자로만 개구리 소리를 표현했다는 작가의 변(辯)은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과 서러움을 감추는 기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입추를 앞두며 개구리 울음소리 잦아드는 때이다. ‘어정뜨기는 칠팔월 개구리’라는데, 생각 없이 이 시절을 지내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처지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마저 개구리가 들으면 꽤나 서운할 말이다. 칠팔월 개구리인들 응당 할 일을 제쳐둘 리 만무하니, 시인 백석의 동화 ‘개구리네 한솥밥’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난하나 마음 착한 개구리가 쌀을 구하러 벌 건너 형을 찾아 나섰는데 길가 봇도랑에서 나는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ㄴㅢㅇ큼’ 뛰어 가보니 소시랑게 한 마리가 있어, 왜 우냐고 ‘뿌구국’ 물었더니 ‘발을 다쳐 아파서 운다’는 말에 배고픔과 바쁜 길을 잊어버리고 다친 발을 고쳐 주었다.

개구리는 물질적 빈곤 속에서도 낯선 이의 아픔이나 슬픔을 접했을 때 냉큼 다가섰고, 자기와는 모양새가 전혀 다른 소시랑게의 말에도 뿌구국하며 귀 기울였으며, 아무리 제 일이 급해도 상대의 어려움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지녔다. 연이어 만나는 곤충들에게도 매한가지로 그저 어려움을 묻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따름이었다.

결말은 어땠을까. 개구리가 형에게서 벼 한 말을 얻어 되돌아올 땐 이미 날이 저문 뒤였다. 어두운 길에서 개구리는 결국 넘어지고 마는데, 이후 이야기는 상상에 맡긴다. 다만 다음과 같은 훈훈한 마무리의 계기를 헤아려 봄 직하다.

“불을 받아 준 개똥벌레, 짐을 져다 준 하늘소, 길을 치워 준 쇠똥구리, 방아 찧어 준 방아깨비, 밥을 지어 준 소시랑게, 모두모두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