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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외교다-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
2022년 07월 27일(수) 00:30
최근 이탈리아를 이끌던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취임한 지 1년 6개월 만에 사직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내각 수명이 1년 6개월이면 결코 짧은 편은 아니다. 1946년 이후 내각이 67번이나 바뀌어 이탈리아 정부의 평균 내각 수명이 13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렇다. 신기한 것은 정치가 이렇게 불안정함에도 이탈리아의 국가적 위상과 국력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치와는 달리 관료제가 안정적이고 국민적 수준이나 경제인의 저력이 탄탄한 덕분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직업인 중에서 정치인만큼 큰 혐오의 대상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정치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1987년 6월 항쟁 때 온 나라가 최루탄으로 가득했어도 경제는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국정을 소홀히 한 시기에도 선진 국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무능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던 문재인 정부 때는 세계 공식 기구에 의해 우리나라가 선진 국가에 진입했다고 공식 인정받았다.

윤석열 정부 때라고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달 만에 밑바닥 지지도를 보여줄 만큼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라 사정이 크게 나빠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국민 수준, 관료와 기업인의 수준은 이미 이탈리아 수준을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 하에서 진짜로 걱정되는 분야가 있다. 외교 문제다. 미국이 절대적 우위를 점했던 냉전체제 때와는 달리 미·중이 양강 구도를 형성한 신냉전체제에서 우리 외교는 매우 어려운 과제를 떠안았다. 그런데도 외교 문제에 문외한인 윤석열 대통령이 남북 관계 및 대미·대중 관계에 너무 용감하게 그리고 단순 방식으로 임하고 있다. 북한을 향해서는 선제 타격론 등 자극적인 발언을 자주 하고, 미·중 관계에서는 너무 표나게 미국 편을 들고 있다. 자꾸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떠올라 불안하다.

어린이들이 싸울 때 처음부터 크게 싸우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말로 싸우다가 한쪽이 주먹으로 때릴 흉내를 내면 상대방도 주먹을 든다. 이 경우 대부분은 진짜 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제스처이다. 다시 한쪽이 더 강한 제스처를 취하면 상대방도 그렇게 하고, 그러다가 큰 싸움으로 번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하는 선제 타격론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전쟁을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닐 것이지만 그런 언행을 자주 하면 상대방도 비슷한 제스처를 취하게 되어 있다. 국방부 장관도 아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남북 관계를 대결 구도로 앞장서 이끌고 나가는 것 같아 큰 걱정이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P)에 출범 멤버로 참여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또 중국을 견제하는 안보협의체로 일본·호주·인도 등이 참여하는 쿼드(QUAD) 참여도 모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사안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이해가 가는 면도 없지 않지만,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는 것과 연결하여 보면 그의 외교 행위는 분명 미·중 균형 외교가 아니라 미국 편중 외교의 성격을 띤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한미일 삼국 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윤 대통령이 너무 쉽게 말려드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국방력 강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력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의 대중국 수출 규모는 한국 전체 수출 액수(2021년 기준 6445억 달러)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 경제 발전만이 아니라 안보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혹시라도 미국은 정치 군사 동맹국, 중국은 경제 동맹국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있다면 곤란하다.

국내 정치는 앞으로 잘하면 얼마든지 국민적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교 문제는 한번 엉클어지면 임기 내내 만회가 어려울 수 있다. 외교적 실수는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가 안보와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해 인내하고 또 인내하면서 최대한 대화를 끌어내기 바란다. 한미 동맹을 잘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