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출신 위선환 시인 “나의 시 주제는 사람과 언어·구원”
‘순례의 해’ ‘대지의 노래’ 등 묶어 시집 발간
용아문학상…60년 광주시단 그리워
용아문학상…60년 광주시단 그리워
![]() 위선환 시인. <위선환 제공> |
장흥 출신 위선환 시인은 1960년 용아 박용철 시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용아문학상으로 등단했다. 그의 문학적 출발은 그렇게 화려했다. 당시 박두진이 그의 시를 선정했다는 것은 시적 역량이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후로 그는 한동안 오랫동안 시를 끊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1969년 말에 시를 끊었다가 30년이 지난 1999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의 시적 자질을 아는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최근 세 편의 시집을 묶은 ‘위선환 시집’(상상인)을 펴내고 오랜만에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올 봄에 ‘비늘들’이라는 시 에세이집을 펴낸 바 있지만 시인은 시로 자신의 문학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이번 시집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서툰 표현이 되겠습니다 마는 당시에 나에게는 아담하고 곱게만 읽히던 우리시에 대하여 이물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시’를 쓰겠다고 마음먹고 전위시(아방가르드시)를 쓰기 시작한 것인데 그렇게 쓴 시가 매우 난해해서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현재 인천에 거주하는 관계로 시인과는 전화와 메일을 통해 작품집 출간 관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화 저편에서 전달되는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강단이 느껴졌다. 흔히 말하는 외유내강형의 성품이 아닐까 싶었다.
장흥은 문향(文鄕)이라고 일컬을 만큼 우리 문학사에서 뛰어난 문인들을 배출했다. 고(故) 이청준·송기숙 소설가를 비롯해 한승원, 이승우 소설가, 이대흠 시인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후기의 존재 위백규 선생도 뛰어난 시인이었다.
위선환 시인의 시 또한 그렇게 장흥의 문학, 남도의 문학을 계승한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다른 시’를 쓰기 위해 시도했다. 그는 “언어와 시가 발전하는 궤적이 언어와 시가 더불어서 시도하며 달라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낸 시집이 지난번에 낸 시집보다 발전적으로 달라진 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 시집은 모두 세 권의 시집을 한 책으로 묶어 간행됐다.
‘순례의 해’, ‘대지의 노래’, ‘시편’ 등이 그것이다. “이들 시집을 낱권으로, 간격을 두고, 따로따로 간행할 시간이 없다”는 말에서 오랜 창작의 여정을 의미있게 갈무리하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나는 서정시가 지향하는 궁극이 세계의 본래 본연 실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의 주체를 사람이라고 보는 내 관점에서는 세계의 본래 본연 실상이란 것이 사람의 있음이며 죽음이며 신이며 대지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그것들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시인은 끊임없이 시의 발전을 도모했다. “1960년대 쓴 ‘다른 시’와 오늘에 쓰는 ‘다른 시’가 하나로 만나고 적합하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말에서 시에 대한 열정이 읽힌다. 오랜 세월의 간극 속에서 시인은 끊임없는 ‘갱신’과 ‘합일’을 시도하지 않았나 싶다.
“지극한 저 사이거나/ 빤한 그 사이거나/ 지나치는/ 잠깐 사이거나/ 무심히/ 돌아본 어느 사이거나/ 틈새가 닳는// 사이가// 다시 걷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을 지켜보며/ 눈자위가 식는/ 사람의/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끼어 있다”
위 시 ‘사이’는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이미지를 상정한다. 조강석 평론가는 “시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시어가 ‘사이’일 것이라는 사실을 시집을 읽는 독자는 직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집 안에서 분절되는 풍경 혹은 세계는 단속되지 않고”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시인은 그 ‘사이’ 속에서 삶에 대해, 문학에 대한 성찰을 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사이’라는 시간 속에서 창작이 지속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남도에 대한 기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1960년 광주를 이야기했다.
“1960년대의 광주의 시는 그립습니다. 박봉우, 박성룡, 정현웅, 윤삼하, 주영명, 이성부, 문순태 등 시 쓰는 이들의 풋풋한 서정이 있었고 언어 또한 신선했거든요”
한편 위선환 시인은 지금까지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탐진강’, ‘수평을 가리키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 현대시작품상, 현대시학작품상, 이상화시인상을 수상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그러나 이후로 그는 한동안 오랫동안 시를 끊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1969년 말에 시를 끊었다가 30년이 지난 1999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의 시적 자질을 아는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서툰 표현이 되겠습니다 마는 당시에 나에게는 아담하고 곱게만 읽히던 우리시에 대하여 이물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시’를 쓰겠다고 마음먹고 전위시(아방가르드시)를 쓰기 시작한 것인데 그렇게 쓴 시가 매우 난해해서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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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은 문향(文鄕)이라고 일컬을 만큼 우리 문학사에서 뛰어난 문인들을 배출했다. 고(故) 이청준·송기숙 소설가를 비롯해 한승원, 이승우 소설가, 이대흠 시인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후기의 존재 위백규 선생도 뛰어난 시인이었다.
위선환 시인의 시 또한 그렇게 장흥의 문학, 남도의 문학을 계승한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다른 시’를 쓰기 위해 시도했다. 그는 “언어와 시가 발전하는 궤적이 언어와 시가 더불어서 시도하며 달라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낸 시집이 지난번에 낸 시집보다 발전적으로 달라진 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 시집은 모두 세 권의 시집을 한 책으로 묶어 간행됐다.
‘순례의 해’, ‘대지의 노래’, ‘시편’ 등이 그것이다. “이들 시집을 낱권으로, 간격을 두고, 따로따로 간행할 시간이 없다”는 말에서 오랜 창작의 여정을 의미있게 갈무리하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나는 서정시가 지향하는 궁극이 세계의 본래 본연 실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의 주체를 사람이라고 보는 내 관점에서는 세계의 본래 본연 실상이란 것이 사람의 있음이며 죽음이며 신이며 대지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그것들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시인은 끊임없이 시의 발전을 도모했다. “1960년대 쓴 ‘다른 시’와 오늘에 쓰는 ‘다른 시’가 하나로 만나고 적합하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말에서 시에 대한 열정이 읽힌다. 오랜 세월의 간극 속에서 시인은 끊임없는 ‘갱신’과 ‘합일’을 시도하지 않았나 싶다.
“지극한 저 사이거나/ 빤한 그 사이거나/ 지나치는/ 잠깐 사이거나/ 무심히/ 돌아본 어느 사이거나/ 틈새가 닳는// 사이가// 다시 걷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을 지켜보며/ 눈자위가 식는/ 사람의/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끼어 있다”
위 시 ‘사이’는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이미지를 상정한다. 조강석 평론가는 “시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시어가 ‘사이’일 것이라는 사실을 시집을 읽는 독자는 직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집 안에서 분절되는 풍경 혹은 세계는 단속되지 않고”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시인은 그 ‘사이’ 속에서 삶에 대해, 문학에 대한 성찰을 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사이’라는 시간 속에서 창작이 지속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남도에 대한 기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1960년 광주를 이야기했다.
“1960년대의 광주의 시는 그립습니다. 박봉우, 박성룡, 정현웅, 윤삼하, 주영명, 이성부, 문순태 등 시 쓰는 이들의 풋풋한 서정이 있었고 언어 또한 신선했거든요”
한편 위선환 시인은 지금까지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탐진강’, ‘수평을 가리키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 현대시작품상, 현대시학작품상, 이상화시인상을 수상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