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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자율적 해결 역량과 도시 경쟁력] 갈등의 진정한 해결은 ‘문제 해소’ 넘어 ‘관계 회복’
주민·기업·공공기관 갈등 주체
시민 전체가 잠재적 이해관계자
차이·다양성에 대한 존중 필요
광주중앙공원 주민공론장 바람직
2022년 07월 20일(수) 02:00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자율적 해결 능력을 갖추는 게 바로 도시 경쟁력이다. 조성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된 광주 중앙공원 역시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갈등은 복수의 사람들이 목표, 가치, 이해관계, 의미와 해석, 정체성 등이 충돌하면서, 쌍방 혹은 상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상태를 말한다. 다양성과 차이가 특징인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전환이란 사회변동까지 겹쳐 도시가 각종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파트 층간소음에서 영구임대-일반분양아파트, 도로 공동이용 갈등, 소각시설 등 도시 편의시설 건설 갈등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규모와 원인, 진행 양태도 천차만별이나, 갈등에서 자유로운 도시는 없다.

◇ 갈등의 규모, 주체, 시점

도시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띠고 있으나, 이를 갈등 규모, 주체, 발생 시점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갈등의 규모 면에서, 작게는 조망권, 층간소음, 주차장 활용 등과 같이 개인 혹은 가족을 단위로 하는 갈등, 임대아파트-일반분양아파트 주민간 공간 활용, 생활도로 건설 혹은 변경 등과 같은 아파트 단지 혹은 마을 단위 갈등도 있다. 소각시설, 음식물처리시설 등과 같은 편의시설 설치 혹은 변경을 둘러싼 갈등, 장례시설·교정시설·요양시설·복지시설 등의 유치 여부를 둘러싼 갈등, 도로·철도 등 교통 시설의 신설 혹은 위치 결정을 둘러싼 갈등도 갈등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광주도시철도 건설 여부, 대전 월평공원 활용 방안 등과 같이 시민 전체가 잠재적인 이해관계자가 되는 갈등도 있고, 마창진 통합과 같이 도시-도시 간 갈등도 있다. 갈등의 규모가 커질수록 갈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갈등은 주체면에서 주민 대 주민, 주민 대 기업, 주민 대 공공기관 갈등으로 크게 구별할 수 있다. 주민 대 주민 갈등은 층간소음과 같이 사생활 침해와 관련된 갈등과 같이 빈발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사생활 침해와 사업이나 시설 유치에 따른 주민 간 비용-편익 불일치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주민 대 기업 간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는 쇼핑몰 등 대규모 상업시설 유치 여부, 주민의 건강 혹은 안전, 주변 생태계 훼손이 우려되는 공장, 보관창고, 폐기물 시설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이전엔 주민 불만을 보상 등을 통해 무마해왔으나, 삶의 질을 중시하는 현시점에서 주민 요구는 증가하고, 갈등 해결은 쉽지 않다.

주민과 공공기관 간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는 각종 편의시설 유치를 둘러싼 갈등이다. 도시민 전체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공공기관의 입장과 이를 주민 삶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혐오시설 혹은 선호시설로 인식하는 공공기관과 주민 간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이다. 주민의 의견을 무시한 공공기관의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사업 추진이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으나, 갈등관리 제도화 등을 통해 갈등 건수는 감소 추세에 있다.

갈등 발생 시점과 관련해서는 신도시 건설과 같이 구상 혹은 기획 단계에서 발생하는 갈등, 환경영향평가 등 계획 수립 및 보상 단계에서 발생하는 갈등, 관리 책임 주체 등과 같이 건설 이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있다. 갈등 해결 노력은 사업 초기일수록 효과적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하는 일이 되었으나, 실제 사업은 정반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임대·분양 아파트의 갈등 사례.
◇ 갈등의 원인과 특징

갈등의 성격과 특징을 살펴보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은 갈등 발생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다. 갈등 발생의 대표적인 원인은 크게 가치관의 차이, 이해관계 충돌, 사실관계에 대한 인식 차이와 더불어, 소통 부재, 제도 미비나 비현실성, 역사적 경험과 정체성 차이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갈등의 성격과 특징 면에서 도시는 농어촌 등 전통 촌락과 차이를 보이지만, 같은 도시라고 해도, 전주, 광주, 나주처럼 전통적인 촌락이 확장되고 발전하여 형성된 도시와 분당, 일산, 마곡, 위례처럼 인위적으로 조성된 신생도시 간에는 차이가 작지 않다. 이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도시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갈등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인 촌락의 경우, 혈연, 지역, 학연, 정서적 유대, 위계질서 등에 기반하고, 도시에 비해 동질성이 강하다. 거기에 현대에 이르러 약화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동질성과 정체성이 강한 만큼 가치 갈등이 적고, 이해 갈등은 공동체 내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해소된다.

갈등이 발생해도 자체 조정 메커니즘을 통해 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게 되지만, 관리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감정적·정서적 요인까지 결합하여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또한 내적인 결속이 강한 만큼 다른 공동체와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 갈등은 매우 심화되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도시는 익명성과 개별성이 강하고, 경쟁과 이해관계 충돌이 일상화된 공간이다. 개별적 선호와 가치관의 차이가 가치 갈등의 기반을 이루고 있고, 삶의 개방성은 약하고 일상적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촌락과 달리, 갈등을 예방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자체 메커니즘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심화된 갈등은 대부분 법적 소송을 통해 해결한다. 갈등의 법적 해결이 도시에서 발생한 갈등의 대표적인 해법이다. 여기에 최근 디지털 전환과 SNS의 일상화에 따른 정보 편식, 가짜뉴스, 확증편향, 집단화, 극단화는 갈등 발생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 갈등해결의 의미

정서적 동물이고, 타인과 경쟁뿐 아니라, 협력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문화를 일궈온 인간에게,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은 갈등을 일으킨 문제의 해소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갈등의 진정한 해결은 문제의 해소 (problem settlement)을 넘어, 관계 회복(relationship recovery)을 요구한다.

우리 도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갈등은 다발하고 있으나, 그 속에 사는 시민은 갈등을 스스로 자체적이고, 협력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적 권한을 가진 타인(판사)의 강제력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각종 소송으로 갈등해결 비용은 증가하고, 관계는 오히려 악화되고, 갈등에 따른 사회적 분열과 적대는 날로 커진다. 그렇다고 갈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던 전통사회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또한 갈등의 주체가 바뀌고 있다. 공공기관과 시민(주민)간 공공갈등 중심에서, 시민사회 내부 다양한 조직과 집단간 갈등, 시민과 시민 간 갈등, 즉 사회갈등으로 갈등의 주체가 변하고 있다. 바야흐로 선진국형 갈등의 출현이다. 공공기관이 한 축을 이루는 공공갈등의 경우, 공공기관은 갈등의 당사자이자, 갈등을 관리할 책임 주체이고, 갈등 해결을 위해 공적 자원을 활용하게 된다.

반면 사회갈등의 경우, 시민 다수가 갈등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이지만, 갈등해결 책임을 특정하기 어렵고, 해결에 필요한 재원 조달도 쉽지 않다. 사회갈등 해결은 말 그대로, 시민사회의 갈등해결 의지와 역량에 달렸다고 말할 수 있다. 갈등을 스스로 해결해본 경험이 부족한 우리의 경우, 큰 난관에 직면한 것이다.

광주 중앙공원에 대한 주민친화형 공원 조성을 위한 자발적 주민 공론장 운영 모습.
◇ 갈등해결의 기본 방향

갈등 해결의 최선책은 ‘예방’이다. 갈등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진단하고 갈등 발생 요인을 줄여야 한다. 기반시설이든 편의시설이든, 해당 사업의 영향권 내에 있는 시민(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사전에 파악하고, 시민 간에 비용-편익의 불일치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법적 절차만을 갖춘 요식행위가 아니라, 시민(주민)의 의견을 사전에 실질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민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상황에서 대화와 설득, 이해와 공감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분배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의 실현, 설득과 공감 형성이 갈등 예방과 해결의 지름길이다.

둘째는 갈등의 ‘자율적 해결’이다. 갈등 당사자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법의 심판에 의지하는 것은, 많은 경우 관계 파괴적이고, 반발효과(Backlash)을 낳게 된다. 생활 주변의 작은 문제들부터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해가는 훈련이 필요하고, 필요한 경우, 공공기관은 심판자가 아니라 조정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는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다. 누구나 동의하는 말이지만, 좁은 공간에서 이질적 문화를 배척해온 한국인에게 이질적인 것과의 공존은 말처럼 쉽지 않다. 차이를 감내할 줄 아는 내성을 길러야 한다. 차이를 인정할 때라야, 차이를 넘어선 대안 도출이 가능하다.

이제 도시에는 국민 80% 이상이 살아가고, 도시민 40% 이상은 홀로 살아간다. 개별성이 강한 개인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국가나 공공기관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사람과 만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줄 알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발생한 갈등을 비적대적이고 생산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21세기 도시민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이다.

당진 산업폐기물 처리장 관련 공론화, 광주 중앙공원 주민공론장 등을 포함하여 갈등과 문제해결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시민의 잠재 역량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박태순

사) 한국공론포럼 상임대표

사) 사회갈등연구소 소장

생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