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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이룬 후엔 왜 물러나야 한다고 했을까?
이 병 우 우아포인트연구소 대표
2022년 07월 20일(수) 00:15
“공을 이루고 나면 물러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노자 도덕경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노자는 왜 공수신퇴(功遂身退)를 자연의 이치라고 했을까? 고대 왕조시대에는 공을 세웠지만 물러나지 않으면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공수신퇴는 겸양의 미덕이 아니라 자신을 보전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인 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을 세우고 직위가 높아질수록 흔드는 사람이 많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위험하다.

세조 때 남이는 이시애 난을 평정한 공으로 20대 중반에 판서에 등용됐다. 최연소 판서가 됐으나 이내 모함을 받아 28세에 처형됐다. 새파란 20대에 판서가 됐으니 훈구 대신들에겐 어떻게 비쳤을까? 시샘과 모함이 엄청나지 않았을까? 21세기에서도 경륜과 나이가 중시되는데 말이다.

그리고 개혁파와 훈구파가 싸우면 십중팔구는 훈구파가 이긴다. 개혁파는 대개는 젊고 의욕이 앞선다. 세력도 없으면서 명분만 가지고 덤비다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 훈구파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으면 똘똘 뭉쳐서 반격한다. 중종 때 조광조는 개혁을 도모하다 훈구파의 반격을 받고 몰락했다. 이때 나이 37세였다.

공수신퇴와 토사구팽의 대표적인 사례가 ‘한초삼걸’의 운명이다. 초한 쟁패전에서 유방을 도와 승리로 이끈 세 명의 인물이 장량, 소하, 한신이다. 유방 스스로 이 세 명의 도움이 있었기에 항우를 무찌르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유방이 천하를 쟁패한 후 세 인물은 명운을 달리했다. 장량은 많은 포상을 사양하고 직위에서도 한발 물러났다. 공수신퇴의 길을 간 것이다. 장량은 명리에 담백한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했기 때문에 유방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았다. 소하는 재상직을 수행했다. 권한이 큰 만큼 전쟁 중에도 유방은 소하를 때때로 의심했다. 그럴 때마다 소하는 유방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욕심이 없음을 보여줘야 했다. 뛰어난 정치 감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반면에 한신은 달랐다. 전쟁터에선 천재였지만 정치에는 백치 수준이었다. 장량처럼 명리에 담백하지도 못했고 소하처럼 정치적인 노련함도 없었다. 제나라를 평정한 후 제왕으로 봉해 달라고 요청해 유방의 노여움을 샀고 이후에도 유방에겐 심히 불편한 존재로 여겨졌다. 항우가 있었기에 참았던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어떻게 인식되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공적이 있으니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토사구팽 당하고 말았다.

정치권에서 토사구팽이 회자되고 있다. 우리 정치사에 대통령 선거, 지방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끈 정당 대표가 팽당한 사례가 있었던가?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긴 정치 입문 1년도 안돼서 대권을 휘어잡은 것도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대선, 지선이 끝나자마자 젊은 당 대표를 팽한 국민의 힘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국민에게 비칠지 두고 볼 일이다.

유사 이래 기득권층은 약점을 찾아내어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없는 죄도 만들어낼 참인 데 있는 약점을 보고 그대로 두겠는가? 공수신퇴는 이러한 인간 군상의 심리를 파악했기에 출현한 생존 지혜가 아닐까? 비상식의 상식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요즘, 공수신퇴와 토사구팽의 교훈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