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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는 사죄로, 용서는 용서로 이어져…5·18 응어리 풀다
5·18 때 경찰 치어 숨지게 한 버스기사, 42년만에 유가족에게 사과
당시 사형 판결 내린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2017년 버스기사에 사죄
최루탄에 정신 잃어 사고…버스기사는 유가족에 사과하고 묘지 참배
유가족 “모두가 피해자…학살 책임자 누구인지 진정한 진실 밝혀야”
2022년 05월 19일(목) 21:20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다가 돌진한 버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고 이세홍 경사 유족 강귀례 씨와 버스 운전 가해 당사자가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에서 만나 사과와 용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투입됐다가 죽임을 당한 경찰들의 유가족이 42년 만에 가해 당사자에게 사과를 받았다. 계엄군과 시위 군중이 극한 대치를 이뤘던 1980년 5월 20일 시민들 요구를 받고 광주 금남로로 고속버스를 몰고 나섰다가 경찰 4명을 충격해 숨지게 했던 가해 남성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유족들은 “당신도 피해자”라며 다독였다.

19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배용주(76)씨는 이날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 앞에서 5·18 당시 자신이 몰던 버스 때문에 숨진 함평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의 유족과 마주했다.

이날 만남은 5·18진상조사위가 당시 시위진압에 투입됐던 군과 경찰에 대한 피해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순직 경찰 유족들이 사과를 받기를 원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경찰 4명을 사고로 죽게 했던 배씨 역시 유족들의 뜻을 전해듣고 “백번이고 천번이고 찾아뵙고 직접 사죄드리고 싶다”는 입장을 5·18진상조사위에 전하면서 용서와 화해의 장이 마련됐다.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진행된 만남에는 순직 경찰 4명 가운데 3명의 유족 7명이 참석했다. 배씨는 경찰충혼탑에 분향하고 순직 경찰관 묘를 찾아 사죄의 절을 올렸다.

유가족들에게도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에 유가족들은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인다. 당신도 피해자이고 돌아가신 저희들 아버지도 같은 피해자”라고 다독였다. 유족들은 이어 “이 모든 희생과 죽음에 정작 책임질 5·18 진압의 장본인들은 사죄도 않고 있다”며 “저희들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5·18진상조사위가 5·18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주셔야 한다”고 했다.

유족들 말대로 5·18 당시 버스를 몰고 금남로로 나섰다 사고를 낸 배씨 역시 일종의 피해자였다.

5·18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다수 경찰이 숨진 불상사는 1980년 5월 20일 밤 9시 광주시 동구 노동청 앞에서 일어났다.

시민군을 버스에 태우고 시위대의 도청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저지선을 갖추고 서 있는 경찰관들을 뚫을 방법을 궁리를 하던 때였다. 경찰의 최루탄과 터질 듯한 함성 소리가 들려오더니 어느 순간 의도치 않게 시동이 걸린 버스가 앞으로 돌진했다는 게 배씨의 설명이었다. 이 사고로 경찰관 4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났다.

소요·살인 혐의로 붙잡힌 배씨는 같은해 10월 24일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배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1심 재판장은 중위 계급장을 단 김이수 조선대학교 이사장(전 헌법재판관)이었다.

김 이사장은 37년 만인 2017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배씨에게 “그 재판을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떳떳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제 마음의) 짐이 됐다”며 직접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편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배씨는 김수환 추기경과 5·18 구속자 가족들이 구명활동에 나섰으나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행스럽게도 1981년 4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1982년 3월에는 20년형으로 줄어 그해 겨울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이후 1998년 재심에서 ‘헌정 질서를 수호하려는 행위로서 정당행위’로 인정된다며 배씨는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