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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선율 딴 아름다운 노래 사랑은 뜨거움 보다는 진정성
조현영의 클래식 영화를 만나다
<15>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올 바이 마이 셀프’
서른둘 브리짓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정반대의 두 매력남
르네 젤위거·콜린 퍼스·휴 그랜트 주연 로맨틱 코미디
‘서정적 로맨티스트’ 라흐마니노프…피아노 연주도 일품
에릭 카멘, 2악장에 가사 붙인 팝송 ‘올 바이 마이 셀프’ 인기
2021년 12월 29일(수) 06:00
20년이나 지난 영화가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소환되는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 헬렌 필딩이 쓴 소설을 원작으로 샤론 맥과이어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는데, 영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 가장 사랑 받는 작품이다. 개봉 당시 30대 솔로 여성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작품인데, 나 역시 열광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영화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이 주는 환상보다는 현실적인 모습의 주인공 ‘브릿지 존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상대에게 자꾸 나를 맞추게 만드는 불편한 애인 ‘다니엘(휴 그랜트)’보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사랑해주는 남자 ‘마크’(콜린 퍼스)와의 해피엔딩 로맨스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마크가 그녀에게 했던 대사 중 “난 있는 그대로의 네가 정말 좋아”는 하나의 주문처럼 솔로들에게 희망을 줬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주인공 브리짓은 술과 담배를 즐기는 유쾌한 여자다. 하지만 왠지 촌스러운 옷차림과 어설픈 행동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녀는 다이어트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실제로는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 언제나 순간의 즐거움을 택할 줄 아는 평범한 여인이다. 32살의 새해에도 어김없이 솔로인 브리짓은 엄마가 초대한 새해 파티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지만 서로 관심도 없고, 이상형도 아닌 이혼남 마크를 만나게 된다. 마크는 다니엘과 대학동창이고 친한 사이였지만, 다니엘이 자신의 일본인 전부인과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절교를 선언한다.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엄마 말 잘 듣는 마크는 술, 담배를 하는 브리짓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편 브리짓은 미남 직장 상사 다니엘에게 마음이 자꾸 끌린다. 사랑에 빠진 그녀는 예뻐 보이려고 본격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해보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변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중 데이트를 하는 다니엘에게 큰 실망을 하고 헤어진다. 다니엘을 쉽게 잊지 못해 힘들어하는 중에 마크와 가까워지고, 다니엘은 다시 브리짓에게 다가온다. 이렇게 해 세 사람의 러브라인은 얽히고설키다가, 마지막에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크라는 것을 느끼면서 브리짓과 마크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역시 사랑은 뜨거움 보다는 진정성일까?

영화 첫 장면에서 브리짓은 잠옷을 입은 채 아무렇게나 소파에 앉아 혼자 와인을 마신다. 그리고 온 몸으로 가사의 내용을 느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른다. 바로 이 장면에 흐르는 팝송 ‘올 바이 마이셀프’가 오늘 소개할 클래식과 관계있는 음악이다.

라흐마니노프
분명히 클래식이 아닌데, 왠지 클래식 같은 곡이 있다. 클래식에서 흘렀던 멜로디가 노래 속에 있는 경우가 그렇다. 영화에서 브리짓이 큰 소리로 부르는 음악은 ‘모든 것을 내 스스로’라고 번역되는 ‘All by myself’다. 영화에서는 제이미 오닐의 음성으로 흐르지만 원곡은 에릭 카멘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 불렀다.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주인공의 마음과 딱 어울리는 곡이다.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불렀지만 원곡자인 에릭 카멘의 목소리가 가장 호소력 짙다. 이 노래는 듣는 내내 라흐마니노프를 연상시키는데, 실제로 에릭 카멘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을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고, 저작료를 지불하며 계속 불렀다고 한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추운 나라 러시아 사람이다. 그를 두고 보통 ‘북구의 로맨티스트’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의 음악은 굉장히 서정적이고 감미롭다. 그래서 광고나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분위기 꽉 찬 음악이라 그런지 찬바람 부는 겨울이 되면 더 생각난다. 그는 2m 가까운 큰 키에 30㎝ 정도의 긴 손을 가졌다. 그런 신체적인 조건 덕에 어려운 곡을 연주하는 데도 기술적인 문제가 전혀 없었다. 피아노 건반의 13도(한 옥타브 하고도 5음 정도를 더 누를 정도)를 넉넉하게 짚었다니 ‘거인국의 걸리버’ 같다. 손가락이 유난히 길었던 그를 두고, 현대 의학자들은 거대증이라고도 불리는 ‘마판증후군’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1873년에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음악적 소양이 뛰어난 아버지와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어머니로부터 첫 음악교육을 시작했다. 어릴 적 부유했던 집안은 한순간에 아버지의 심한 낭비벽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몰락했고, 두 누이의 죽음까지 겹치며 개인적으로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는 스무 살의 나이에 모스크바 음악원의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오페라 ‘알레코’로 스타덤에 오른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준 스승과 존경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죽자 음악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방황한다.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20세) 성공의 맛을 봐서인지 작은 실패에도 괴로워했다. 1895년(22세) ‘교향곡 1번’을 발표하는데, 불행하게도 이 곡의 초연이 실패한다. 극도로 세심하고 예민했던 그에게 초연 실패는 큰 충격이었고, 살아생전에 그 교향곡은 다시 듣지 않았다고 한다. 급기야 심각한 우울증을 앓으며 한참을 헤매다가, 정신과 의사인 달 박사를 만나 치료를 하고 극복한다. 이후 1900년에 ‘피아노 협주곡 2번 op.18’을 작곡해서 성공을 하게 되니, 이 곡이야말로 라흐마니노프를 살린 곡이다.

이 곡은 특이하게도 2악장, 3악장, 1악장 순으로 작곡됐는데 2악장이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고 있다. 보통 피아노 협주곡은 1악장과 3악장이 크고 화려한 반면 2악장은 느리고 멜랑콜리한데, 라흐마니노프 역시 2악장에 주옥같은 멜로디를 많이 표현했다.

2악장에도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느리게 그 음을 충분히 눌러서)’라는 나타냄 말이 쓰여 있다. 어떤 음도 허투루 연주하면 안 된다고 분명히 알려주는 지시어다. 이 음악은 듣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황홀경에 빠진다. 라흐마니노프는 본인 스스로가 피아노를 아주 잘 다뤘기에 작곡한 곡을 직접 연주한 음반도 많다.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은 가슴에서 솟아나 오로지 가슴으로 얘기를 걸어온다. 그것은 사랑이다. 음악이란 여신의 자매는 시의 여신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는 슬픔이다.”라고 했다. 브리짓이 부른 에릭 카멘의 노래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모두 사랑과 슬픔으로 올 겨울 우리의 가슴에 얘기를 걸어오고 있다.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 앤 소울 대표





추 천 음 반

▲라흐마니노프 전곡 - 피아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1959년 녹음·2015년 리마스터링)

이젠 이름만으로도 전설이 돼 버린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연주다. 1959년 바르샤바에서 녹음된 음반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최고 명반이다. 당시 러시아 연주가들은 1960년이 돼서야 비로소 서구에 데뷔가 가능했던 시절이었는데, 리히터는 이 연주로 인해 일약 스타가 됐다. 철저하고 완벽한 분석으로 정평이 나있는 그의 연주는 언제나 현대의 연주자들에게 귀감이 된다. 그의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강력한 터치가 라흐마니노프의 재래인가 싶을 정도로 닮았다.



▲에릭 카멘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던 에릭 카멘이 1975년에 발표한 앨범이다. 26살의 앳된 청년에게서 어떻게 이런 음악이 탄생했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실력이다. 라흐마니노프를 너무 좋아해서 그의 피아노 협주곡 멜로디에 음악을 만들었다는 그는 팝송에 클래식이라는 날개를 달아준 가수다. 셀린 디온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리메이크 앨범이 있지만 역시 에릭 카멘의 음성이 가장 좋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2021’ - 노래 제이미 오닐 ‘All By Myself’

영화에 수록된 음성은 바로 제이미 오닐이다. 2021년 재개봉을 맞아서 도처에서 이 앨범이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