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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값
2021년 10월 18일(월) 00:00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의 목숨에도 값이 매겨진다. 불편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목숨에 얼마만큼의 가격이, 또 어떻게 매겨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는 책이 있다. 최근 통계학자이자 보건경제학자인 미국의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이 쓴 ‘생명 가격표’라는 책이다.

여기에는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가 주요 사례로 등장한다. 당시 미국 정부는 2977명의 사망자와 2만5000여 명의 부상자에 대한 보상을 위해 ‘희생자 보상기금’을 마련했다. 미 정부는 4년여의 조사를 거쳐 희생자 1인당 평균 2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4억 원씩을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이 금액에는 희생자의 나이와 소득 및 부양가족 등 거의 모든 변수가 감안됐다.

또 다른 사고의 경우, 예를 들어 1989년 인도 보팔 지역에서 발생한 유니언카바이드 가스 폭발 사고에선 당시 4000여 명의 희생자들의 생명 가격으로 1인당 6만 달러가 매겨졌다. 이밖에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공장 붕괴 사고에선 1100명의 사망자에게 1인당 4만 달러가 목숨값으로 지급됐다.

이들 사례 가운데 정부가 보상에 개입한 9·11테러의 경우 희생자들에게 지급된 보상금은 인종·성별·나이·소득에 따라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인간이 천부적으로 지니고 있는 목숨값’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25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억 원이 책정됐다. 20년 전 금액이라 현재 가치와는 차이가 많은 데다, 그 금액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 정부가 국회 및 유가족의 동의를 받아 지급했다는 점에서 사람의 목숨값에 대해 한 국가의 가치관이 반영된 하나의 기준이 된 것도 사실이다.

최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에서 ‘산업재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32세 청년이 50억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뜨거웠다. 하지만 그 돈이 산재 위로금이라는데 대해서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위로금=50억 원’이라는 등식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결코 용인되지 않는 수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