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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금난새가 부산에 둥지를 튼 까닭은
(8) 부산 이우환공간 & 금난새뮤직센터
# 이우환공간
타도시와 경쟁, 47억 원 들여 2015년 개관
거장의 예술관 ‘여백의 예술’ 고스란히
인근 부산시립미술관과 시너지 창출
# 금난새 뮤직센터
고려제강 후원, 올 4월 ‘F1963’에 오픈
2021년 09월 13일(월) 02:00
지난 2015년 부산시립미술관 조각공원에 개관한 현대 추상미술의 거장 이우환공간 전경. 지상 2층의 1400㎡(423평) 규모로 건립된 미술관은 국내 유일의 이 화백 상설공간으로 1960년 초기작부터 2015년 작품 등 2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공간

“예술은 시이며 비평이고 그리고 초월적인 것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조각공원에 자리한 ‘이우환 공간’(Space Lee Ufan)에 들어서면 화이트 톤의 벽면에 새겨진 메시지가 시선을 끈다. 지난 2002년 이우환(85)작가가 펴낸 ‘예백의 예술’에 나온 글귀로, 거장의 예술관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블랙톤 유리로 마감된 2층 건물은 모던하면서도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미술관 입구를 지나면 마주하게 되는 첫번째 전시실에는 빈 캔버스 3개와 대형 유리를 깨고 자리잡은 거대한 돌덩이가 놓여 있다. 사회에 대한 예술가의 경종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좁다란 통로를 따라 흰색 커튼을 열고 들어간 옆 전시실에는 철판 4개와 자연석 4개가 어우러진 작품이 등장한다. ‘회의(2013)’, ‘관계항(2015)’, ‘관계항-길모퉁이(2015)’ 등 자연과 산업사회의 조응을 상징화 한 거장의 대표작들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설명일 뿐이다.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은 자신의 느낌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감상하면 된다. 애초 작가의 의도는 관람객이 작품을 보면서 궁금해 하거나 신기해 하며 다양한 시각으로 느끼게 하는 데 있다.

계단을 이용해 2층 전시실로 이동하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바깥에서 이우환 공간을 바라볼 때와 달리 계단을 올라가면 인근의 부산시립미술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잔디밭에 설치된 조각 작품과 나무, 고층 건물들이 또 다른 작품을 연출한다.

이우환공간 1층에 전시된 ‘관계항-좁은문’
2층 전시실에는 이 화백의 유명 회화 작품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점으로부터(1974)’, ‘바람과 함께(1988)’, ‘선으로부터(1970)’ 등 13점의 작품이 야외에 설치된 조각작품들과 어우러져 있다. 또한 시청각실에선 이 화백의 작품 세계를 담은 ‘화가들의 초상-이우환편’의 45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지난 2015년 4월 개관한 이우환공간은 부산시가 47억여 원을 투입해 지상 2층의 1400㎡(423평) 규모로 세운 국내 유일의 이 화백 상설 전시장이다. 이 공간에는 이 화백의 1960년 초기작부터 2015년 작품 등 총 24점이 전시됐다. 다른 미술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품들이 많지 않지만 ‘퀄리티’ 만큼은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사실 이우환 공간이 부산에 들어서게 된 건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 화백이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원래는 지난 2012년 대구시가 이 화백과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이우환과 친구들’ 미술관을 추진하는 등 꽤 적극적이었다. 당시 이 화백의 전시관 유치를 위해 부산, 경남 등 여러 지자체들의 물밑 구애가 치열했다. 대구시는 시장이 직접 일본의 이 화백 집을 몇번이나 찾아가 간곡히 부탁할 만큼 공을 들였다. 하지만 막대한 건립비용과 작품기증을 둘러싼 이견으로 대구시가 사업을 접으면서 최종적으로 부산시가 이우환 공간을 품게 됐다.

지자체들이 이 화백의 전시관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 이유는 그의 브랜드 파워 때문이다. 이 화백은 경남중,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전위 예술운동인 모노파 이론과 실천을 주도했다. 이후 벨기에 왕립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베를린 국립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하는 등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로 개관 6주년을 맞은 ‘이우환 공간’은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랜드마크로서 손색이 없다. 개관과 동시에 국내외 미술계 인사에서부터 유치원 어린이까지 하루 평균 수백 여명이 다녀가는 명소로 떠올랐다. 또한 전국 각 대학 건축학과 학생들의 투어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이우환 공간의 작품을 잘 보존하기 위해 단체예약 대신 5∼10명 단위로 관람을 허용하는 등 지역의 문화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올해 4월 문을 연 금난새뮤직센터. 금난새 지휘자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F1963
#금난새뮤직센터

부산시 수영구 양미동에 위치한 F1963은 명실상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간 와이어를 생산하던 공장은 2016년 9월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플랫폼으로 변신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느 도시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부분의 복합문화공간이 전시장, 공연장 등 2~3개 시설을 갖추고 있다면 F1963은 전시관, 공연장, 서점, 도서관, 카페, 레스토랑, 유리온실, 정원 등 공간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F1963은 매번 방문할 때 마다 색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해마다 공간을 확장하면서 시대의 트렌드에 맞는 시설들이 하나 둘씩 새롭게 둥지를 틀고 있어서다. 지난 2017년 중고서점 YES 24를 시작으로 이듬해 국제갤러리 부산 분점, 2019년 예술도서관, 올해 현대 모토스튜디오(현대자동차 브랜드 체험관) 등이 들어서 공간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난 4월 문을 연 ‘금난새 뮤직센터’(Gum Nanse Music Center·GMC)는 F1963의 ‘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부산 출신 마에스트로의 철학인 클래식 대중화를 구현하기 위해 지역의 청소년과 음악학도, 부산 시민들이 언제든지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에 설립했다. 단순히 공연예술교육장이 아닌 금난새 지휘자가 직접 지휘를 맡아 수준높은 실내악 무대를 선보이는, 말 그대로 뮤직센터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금난새뮤직센터는 고려제강 옛 수영공장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F1963에 자리하고 있다.
금난새 뮤직센터가 이 곳에 자리잡게 된 데에는 고려제강의 후원이 있었다. 평소 금난새 지휘자와 인연이 있던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은 도시의 명소로 자리잡은 F1963에 GMC를 유치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자 했다. 클래식 문턱을 낮춰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지역의 문화생태계에 활력을 불어 넣는 등 부산의 문화발전소로 키우려고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고려제강은 서울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설계한 최욱 건축가(One O One Architects)와 통영국제음악당에 참여한 음향 컨설턴트 김남돈(주) 삼선엔지니어링에게 의뢰해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로 꾸몄다. 지하 1층, 지상1층 규모로 설계및 공사기간만 2년이 걸렸다. 슈박스 형태와 잔향 가변시설을 통한 음향홀로 설계된 공간은 음악홀(302㎡·연주자 35명 내외), 연습실 5개(파트연습실 3개, 개인연습실 2개)를 갖추고 있으며 홀의 상부 4면이 유리로 구성돼 공연 및 리허설 모습을 외부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GMC는 개관 이후 매주 토요일 초청음악회를 개최해 독주에서 부터 실내악까지 다양한 무대를 통해 부산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안기 F1963 팀장은 “GMC는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 선 마에스트로 금난새의 이름을 딴 공간에 걸맞게 뛰어난 음향시설과 무대를 지니고 있다”면서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많지만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마스터 클래스, 실내악 페스티벌 등 다양한 음악 관련 프로젝트와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