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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이유있는 변신
2021년 03월 24일(수) 09:00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세노내해(內海)의 나오시마(直島)는 인구 3000여 명의 외딴 섬이었다. 불야성을 이루던 제련소가 문을 닫은 후 주민들이 하나 둘씩 도시로 떠나면서 부터다. 하지만 예술의 낙원으로 거듭난 지금은 한해 100만 명이 다녀가는 글로벌 관광지가 됐다. 그 중심에는 나오시마 지추(地中)미술관이 있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하방공호 콘셉트로 설계한 미술관은 화려한 컬렉션으로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나오시마의 진가는 미술관이 아닌 ‘빈집’에서 더 빛을 발한다.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 ‘혼마치’(本町)의 낡은 집 7채가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세상에 하나뿐인’ 아트 하우스로 탄생한 것이다. 제사를 지내던 신사는 설치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상상력으로 빛과 여백이 가득한 ‘마나미 데라’(南寺)로 변신했고, 100년 된 동네목욕탕은 지역 예술가들의 아이디어 덕분에 ‘I ♥ 湯’(I Love You)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빈집을 예술로 되살린, 일명 ‘이에(家) 프로젝트’는 지추미술관과 함께 나오시마의 브랜드가 됐다.

최근 광주에서도 빈집을 무대로 한 의미있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역사, 인물, 예술을 묶어 지역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영상문화콘텐츠 제작소 만지작’의 첫 프로젝트인 ‘빈집-상실 이후에 쓰는 사랑’(3월5~12일)이다. 무엇보다 특정 건물이 아닌, 서구·남구·북구·광산구의 빈집을 전시장으로 꾸민 ‘스케일’이 남다르다.

특히 어떤 이에게는 오랜 세월 삶의 터전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사라진 공간에 대한 흔적을 살피고, 새롭게 해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유승 작가는 서구 상록도서관 뒷편의 빈집을 전시공간으로 선택해 사진과 플래카드로 작업한 ‘지평선’을 선보였고, 민중미술작가 이상화는 남구 사직공원 인근 빈집을 무대로 ‘병원에서 아버지’ 등 드로잉 시리즈를, 박화연 작가는 북구 지역 빈집에서 ‘쓰이지 않는 영상 속’을 전시했다.

뭐니뭐니해도 빈집의 ‘화려한 귀환’은 1953년에 지어진 광주 동명동의 박옥수 고택이 아닐까 싶다. 서석교회 바로 옆 83-3번지에 있는 이 고택은 당초 철거될 운명이었지만 주민들의 요구로 위기를 넘긴 후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2020 공공미술 프로젝트-우리동네미술’을 통해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부활했다. 광주시 동구는 한옥을 개조한 동명동 일대의 카페들과 고택을 연계해 시민 인문학 아지트로 키워나간다는 계획이다.

근래 날마다 하늘로 치솟는 아파트 만큼이나 지역의 도심에는 빈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광주는 2286호이고, 전남은 2019년 말 기준 1만1359호다. 하지만 이렇다할 대책이 없어 손을 놓다 보니 도시 미관을 해치고 범죄의 장소로 악용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전남의 빈집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여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철거나 방치가 능사는 아닐 터. 공간에 맞는 콘텐츠를 채운다면 얼마든지 ‘핫플레이스’로 변신할, 반전을 꾀할 수 있다. ‘이에 프로젝트’와 박옥수 고택이 그 증거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