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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향기 나누며 동명동을 지키는 사람들
2021년 03월 09일(화) 00:00
동명동에서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극단 ‘푸른연극마을’ 오성완(왼쪽)·이당금 연극인 부부.
[푸른연극마을 오성완·이당금]

“지금의 동명동이 젊은이들에게 핫플레이스로 불리고 있다지만, 20여년 전 저희들에게도 동명동은 예술인들이 몰려드는 멋이 있는 동네였습니다. 금남로, 충장로, 장동, 동명동으로 이어지는 예술의 거리는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는 문화 존(Zone)이었죠.”

1996년부터 동명동 일대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극단 ‘푸른연극마을’의 오성완·이당금 대표는 광주를 대표하는 연극인 부부다. 당시 금호문화재단 옆 지하 소극장에 전용극장 ‘씨어터 연바람’을 차리고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연극을 향한 열정 하나로 극단을 유지해오고 있는 이들에게 동명동은 어떤 동네일까.

“저에게 동명동은 ‘신혼살림집 같은’ 곳이에요. 신혼 때는 잘 꾸며보고 잘 살아보고 싶어 여러 계획을 세우잖아요. 설레기도 하고 많은 계획들을 꿈꾸는 시기죠. 작고 초라한 집이라도 그곳에서 꿈을 꿀 수 있는 신혼집 같은 공간이 동명동이었어요. 이곳에서 소극장을 시작하면서 ‘우리도 문화의 중심에 들어왔으니 기본 틀을 만들어보자’ 꿈을 꿨습니다. 서울 대학로처럼 작은 공연장 거리를 만들어보고 싶은 꿈이었죠.”(이당금)

지금도 여전히 광주는 문화의 도시이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충장로, 금남로, 동명동 일대는 그 중심에 있다.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길거리에 젊은이들은 많이 다니는데, 정작 공연장 앞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다 보면 그 변화가 작은 골목으로까지 올 수 있을 거라 기대도 했지만 되레 소극장 등 민간인들이 운영하는 곳은 열악해져 갔다. 예술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문화예술공간이 있으면 사람들의 이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겁니다. 서울 대학로가 술집부터 먼저 생긴게 아니잖아요. 공연장이 들어서고 예술가들이 먼저 그곳에 활력을 불어넣으니 찻집, 식당, 술집 등 상권이 형성된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권이 사업화·대형화 되면서 소극장 입지는 줄어들었습니다. 서울이나 지역이나 반복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동명동이 과거 ‘문화예술의 메카’명성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문화가 있는 날’ 다문화페스타 행사에 참여한 ‘심가네박씨’ 박해용(왼쪽)·심옥숙씨. <박해용씨 제공> 


[책방 ‘심가네박씨’ 심옥숙·박해용]

“종종 푸른길을 산책하는 걸 좋아했어요. 어느날 푸른길을 걷다가 이곳을 발견하게 된 거죠. ‘복잡한 도심에 이런곳이 다 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하고 매력적인 곳이었어요. 문득 정원 앞에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이 현실이 되었네요.”

인문학서점 ‘심가네박씨’를 운영하는 박해용·심옥숙씨 부부. 우연히 발견한 동네에 반해 생각지 못했던 책방을 차렸다. 2017년 5월 봄날이었으니 책방 시작한지도 벌써 햇수로 5년째다.

터를 잡고 책방을 운영하면서 좋은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많은 시도를 해왔다. 지금은 인문학 시민공동체 ‘인문지행’을 이끌며 인문학 강의와 영화·독서동아리, 인문학 기행을 다니며 동네문화를 만들어가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때론 작은 음악회를 열어 모두가 즐기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책방 심가네박씨가 있는 곳은 지산동, 산수동, 동명동이 만나는 삼각주 같은 지역입니다. 계림동까지 아우르고, 바로 옆에 푸른길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이지요. 처음에는 문화거리 책방거리로 좋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게임방 등 상업적인 가게가 많아지는 모습이 두렵기도 합니다. 처음에 봤던 동네의 인상이 사라져가는게 아쉽습니다.”

동명동의 끝자락에 위치하지만 박 대표의 말처럼 이곳도 변화의 흐름을 느끼고 있다. 동명동 카페거리가 확대되면서 음식점들이 바깥쪽으로 밀고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처음 동명동을 만났던 그 마음 그대로 앞으로도 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강좌와 모임 등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동네 문화아지트로의 역할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국악 관악기 공방 ‘청공소리’와 문화카페 ‘딴판’을 운영중인 이순미(왼쪽)·권춘수 대표.


[‘청공소리’ 공방 권춘수·이순미]

‘청공소리’는 국악 관악기를 제작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다. 2012년 건물을 지어서 공방을 차렸으니 햇수로 10년차다. 대금 장인인 권춘수 대표가 직접 단소·대금을 만드는 공방에서는 체험을 할 수도 있고 연주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청공소리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는 권 대표의 아내인 이순미씨가 문화카페 ‘딴판’을 운영중이다. 택견이나 악기 제작, 염색 등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과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병행하다가 지금은 문화카페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의 동명동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죠. 장동과 동명동 일대에 공방이 몇 곳 있었을 뿐 대부분 주택가였어요. 변화가 거의 없을 때라고 볼 수 있지요. 지금은 그나마 있던 공방들도 다 떠나고 카페나 주점, 음식점이 주를 이루는 동네가 된 것 같아요.”

10년간 동명동에서 지내온 권 대표에게 지금의 북적이는 동명동도 예전의 한가로웠던 동명동도 변함없이 ‘사람사는 동네’다. 골목을 좋아하는 그에게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많은 것도 좋고, 동네가 활성화되면서 공방이나 카페에 많은 이들이 찾아와주는 것도 좋다.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건 반갑고 좋지만 카페나 음식점 위주의 변화는 단조로울 수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는 권 대표는 가까운 양림동처럼 공방이나 예술가들이 요소요소에 들어와 문화공간으로 함께 발전해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공방은 작업을 하고 체험을 하고 사람 만나는 공간이다보니 번화가가 된 동명동이 나쁘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오랫동안 이곳 주택가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받아들이기는 반갑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소음이나 담배꽁초, 쓰레기가 늘어나는게 싫다는 분들도 많아요. 상업공간과 문화공간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가며 발전하는 동명동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명동 폐가를 청년들을 위한 문화놀이터 '틈'으로 탈바꿈 시킨 광주청년유니온·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회원들. <광주청년유니온 제공>
[광주청년유니온·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동명동에는 최근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청년들의 문화놀이터이자 누구라도 자유롭게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이다. 공간의 이름은 ‘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 사회에서 맞닥뜨린 현실과의 틈, 완벽하지 않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틈을 서로가 메꿔가길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틈’을 탄생시킨 이들은 청년단체였다. 2012년 창단한 광주청년유니온과 2017년 문을 연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두 단체가 협업해서 광주시 동구가 실시하는 공모사업 ‘청년 상생비상 프로젝트’ 지원금을 받아 도심 속 방치돼 있던 폐가를 직접 단장해 청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지난 3~4년 사이 동명동의 변화를 보면서 공간이 주는 묘한 의미를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인만큼 청년들이 문화적으로 사유하고 공유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죠.”

광주청년유니온 김설 위원장은 길 하나만 건너면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 의류점 등 소비중심적인 가게들이 즐비해 중심가로 발전되는 반면, 동명동 외곽은 오래된 주택과 폐허된 곳들도 많다는 점을 주목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명동을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변화를 주고 싶었고, 청년들이 돈을 쓰지 않고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김 위원장은 “‘틈’은 상상하던 모습을 구체적으로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동명동의 역사나 동네의 숨결이 살아있는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문화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