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전지벽(田地癖)
2021년 03월 04일(목) 22:45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 투기는 정부를 괴롭히는 골칫거리였다. 조선시대에도 땅 투기를 다스리고 서민들의 집 걱정을 해결하는 것이 주요 국정 과제였다. 성종실록에는 성종 12년(1481년) 1월 “재상들이 서로 다퉈 두 채씩 집을 짓기 때문에 서민들은 성 안에 살 수 없다”며 임금이 대신들을 질책하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관리들은 집을 여러 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올라온 경우 서민의 집에 전세 계약을 통해 들어왔다가 집주인을 내쫓는 경우마저 있었다.

명종실록(명종 20년, 1565년)에도 대사헌이 영의정 윤원형을 맹비난하며 상소를 올린 기록이 보인다. “하늘 높은 저택을 10여 채나 이어 짓고, 해변의 간척지와 내륙의 기름진 전답을 사사로이 점유하니, 어찌 지벽(地癖)이 아니겠습니까?”

숙종실록에는 이조참판을 지낸 ‘이상’이라는 양반이 보이는데, 그는 ‘꽃뱀’을 동원해 사기·협박으로 남의 땅을 가로챈 부동산 사기범이었다. 먼저 타깃을 정한 뒤 예쁜 여종을 시켜 땅 주인과 정을 통하게 하고 이를 알리겠다고 협박해 땅을 빼앗았다. 이런 방식으로 토지를 빼앗은 게 한두 건이 아니어서, 숙종실록은 이상을 전지벽(田地癖)을 가진 자라며 비난했다. 전지벽은 남의 땅을 탐내는 버릇을 뜻한다.

이런 판이니 힘없는 백성들이 집을 빼앗기는 일은 더욱 늘어만 갔다. 영조는 왕이 되기 전 궁 밖에 살면서 이런 광경을 수시로 목격했다. 그래서 왕이 되자마자 1724년 ‘여염집 탈취 금지령’이라는 법을 만든다. 권력자들이 백성들의 여염집을 빼앗지 못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아예 매매와 전세조차 금지시키는 이중 장치까지 마련했다. 영조는 1754년, 이 법을 어긴 20명을 유배 보냈을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 격인 한성판윤 어유룡을 파면하기까지 했다. 유생이 법을 어기면 6년 동안 과거 응시 자격도 박탈했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 일부 직원들이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 전 해당 지역에서 투기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많은 사람들에게 심한 박탈감을 안긴 부동산 투기자들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엄중히 다스려야 할 것이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