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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화상’
2021년 02월 17일(수) 09:00
지난해 11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컬렉터의 애장품을 소개하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이름하여 ‘세종 컬렉터 스토리-저 붉은 색깔이 변하기 전에’. 지난 2019년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문 웅 전 호서대 교수였다.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평생 모은 3000여 점의 미술품 중 오윤, 오지호, 배동신, 이응노, 박고석, 이대원, 우제길 작가 등의 작품 120 점을 선보였다. 개막식에는 박양우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하는 등 미술계의 화제가 됐다.

그의 컬렉션이 주목을 받은 건 남다른 철학 때문이다. 방대한 컬렉션의 스케일도 놀랍지만 그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번 손에 들어온 작품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철칙을 50년간 고수해온 것이다. 당연히 충동구매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의 오랜 원칙을 깬 작품이 있었다. 바로 한국 수채화의 거장인 여수 출신 고 배동신화백의 ‘자화상’이었다. 경매에 나온 배 화백의 자화상을 보자마자 “저 작품은 꼭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해 무려 31번의 응찰경쟁을 거듭한 끝에 시작가의 9배를 주고 손에 넣었다. 당초 계획보다 지출이 컸지만 그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때의 결정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전 ‘배동신·양수아 100년의 유산’전이 열리고 있는 중외공원내 광주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지난해 호남 서양화단의 거목인 배동신(1920-2008), 양수아(1920-1972)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 전시회에는 이들의 대표작품들과 사진, 영상, 팜플렛 등 100여종의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들이 선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배 화백의 ‘자화상’이었다. 그의 작품 앞에 서자, 문 컬렉터의 마음이 왜 흔들렸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위풍당당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헐렁한 셔츠에 깡마른 얼굴이지만 안경 너머의 눈빛은 날카롭고 강렬했다. 특히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사실적인 필치는 평생을 수채화에 몰두해온 거장의 치열한 열정을 보는 듯 했다. 순간, 오래 전 공제 윤두서의 ‘자화상’과 이중섭 화백의 ‘자화상’에서 느꼈던 뭉클한 감동이 되살아났다.

먹먹해진 마음을 애써 추스리며 미술관을 나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예전보다 인적이 뜸했지만 중외공원에는 미술관을 배경으로 자신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 이들이 유독 많았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칠 풍경이지만 ‘그날’은 셀카족들의 소소한 일상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아마도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지속되면서 세상속 ‘얼굴보기’가 멀어진 탓이리라.

그러고 보니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스로의 얼굴을 진지하게 들여보는가, 궁금해진다. SNS 시대, ‘셀카’가 트렌드가 됐지만 정작 남에게 보여주는 겉모습이 아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예술인들이 ‘자화상’을 자주 그렸던 이유는 늘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말인데, 올해는 어떤 얼굴로 한 해를 보낼지 한번쯤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새로운 ‘나만의 자화상’을 그려보는 거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