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원단·부인은 디자인…맞춤한복 환상의 짝꿍
[충장로 오래된 가게의 재발견-(2) 한복점 영도주단 40년 째 운영 박치환·김순심 씨 부부]
1975년 원단 도매업부터 시작…문전성시에 한 때 직원 7명 두기도
한복 옛 명성 다시 찾고 싶어…충장로 상인들과 웨딩 박람회 계획
1975년 원단 도매업부터 시작…문전성시에 한 때 직원 7명 두기도
한복 옛 명성 다시 찾고 싶어…충장로 상인들과 웨딩 박람회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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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은 기쁠 때 입는 옷이에요.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가게를 찾아오시니 하루도 힘들 일이 없습니다.(웃음)”
충장로 ‘영도주단’에서 40년째 한복을 팔고 있는 박치환(69·사진 오른쪽)·김순심(여·66)씨 부부는 지금도 한복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한복을 팔며 아들, 딸 셋을 모두 시집·장가 보냈다는 박씨 부부는 “(한복 일을) 10년은 더 하고 싶다”며 웃었다. 박씨는 “나이가 들더라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손님들에게 받은 만큼 예쁜 옷을 계속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주 출신인 박씨는 가게를 열기 전, 고향 사람이 운영하는 한복 가게 ‘부성주단’에서 일했다. 5년 동안 경험을 쌓으며 그는 자기만의 가게를 갖겠다는 꿈을 키웠다.
박씨는 1975년 독립해 충장로 변두리 골목에서 ‘영도상회’를 열고 원단 도매를 시작했다. 매장이라기 보다는 창고에 가까웠지만, 충장로를 넘어 광주 전체 한복집에 원단을 납품할 만큼 인기있었다.
이후 1980년 김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박씨는 마침내 충장로 5가에 정식 점포를 열었다.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해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던 격동의 시대였지만, 가게는 싸고 질 좋은 한복을 맞추려는 손님들로 늘 북적였다고 한다.
“고향 선배를 따라서 한복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적성에도 잘 맞았어요. 장사도 잘 돼서 직원을 5명, 7명씩 두곤 했었죠.”(박치환)
김씨는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나, 박씨와 인연을 맺은 후로는 가게 일에 전념했다. 한복을 ‘전혀 몰랐다’는 김씨는 벽에 메모를 써 붙여 가면서 밤낮없이 일을 배웠다.
“처음엔 쑥스러워 손님에게 말도 잘 붙이지 못했어요. 주변에 장사를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으니, 모든 게 어렵고 힘들었었죠. 지금은 오히려 손님과 대화를 즐기며 행복함을 느껴요.”(김순심)
40년 세월 동안 가게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김씨는 “가게를 찾아오는 모든 이를 진심으로 대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가다 길을 물어오는 사람도, 설령 다른 가게를 찾는 사람이라도 성심 성의껏 대합니다. 그러면 제 진심이 전해졌는지, 꼭 다시 한번 찾아와 주십니다. 손님으로부터 ‘믿음이 가서 왔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지요.”(김순심)
박씨 부부는 손님에게 어울리는 옷을 ‘척척’ 맞추는 전문가가 됐다. 박씨는 원단을, 김씨는 디자인·코디를 맡아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이들에게 남은 목표는 한복의 위상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한복이 옛날같지 않죠.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옷이 아니죠. 결혼식 때나 사진 찍기 위해 잠깐 빌려 입는 옷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젊은 층의 수요에 맞추다 보니 파스텔 톤이 인기를 끌고, 전통 색을 잃기도 해서 더욱 아쉽죠.”(박치환)
박씨는 한복 수요를 늘리기 위해 충장로 상인들과 뜻을 모으고자 한다. 그는 “충장로 상인들이 그동안 다져온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충장로 웨딩박람회’를 계획하고 있다”며 “충장로 사람들이 한복 다루는 실력이 상당하다. 보여주면 깜짝 놀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 영상=김혜림 기자 fingswoman@kwangju.co.kr
충장로 ‘영도주단’에서 40년째 한복을 팔고 있는 박치환(69·사진 오른쪽)·김순심(여·66)씨 부부는 지금도 한복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한복을 팔며 아들, 딸 셋을 모두 시집·장가 보냈다는 박씨 부부는 “(한복 일을) 10년은 더 하고 싶다”며 웃었다. 박씨는 “나이가 들더라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손님들에게 받은 만큼 예쁜 옷을 계속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1975년 독립해 충장로 변두리 골목에서 ‘영도상회’를 열고 원단 도매를 시작했다. 매장이라기 보다는 창고에 가까웠지만, 충장로를 넘어 광주 전체 한복집에 원단을 납품할 만큼 인기있었다.
“고향 선배를 따라서 한복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적성에도 잘 맞았어요. 장사도 잘 돼서 직원을 5명, 7명씩 두곤 했었죠.”(박치환)
김씨는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나, 박씨와 인연을 맺은 후로는 가게 일에 전념했다. 한복을 ‘전혀 몰랐다’는 김씨는 벽에 메모를 써 붙여 가면서 밤낮없이 일을 배웠다.
“처음엔 쑥스러워 손님에게 말도 잘 붙이지 못했어요. 주변에 장사를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으니, 모든 게 어렵고 힘들었었죠. 지금은 오히려 손님과 대화를 즐기며 행복함을 느껴요.”(김순심)
40년 세월 동안 가게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김씨는 “가게를 찾아오는 모든 이를 진심으로 대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가다 길을 물어오는 사람도, 설령 다른 가게를 찾는 사람이라도 성심 성의껏 대합니다. 그러면 제 진심이 전해졌는지, 꼭 다시 한번 찾아와 주십니다. 손님으로부터 ‘믿음이 가서 왔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지요.”(김순심)
박씨 부부는 손님에게 어울리는 옷을 ‘척척’ 맞추는 전문가가 됐다. 박씨는 원단을, 김씨는 디자인·코디를 맡아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이들에게 남은 목표는 한복의 위상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한복이 옛날같지 않죠.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옷이 아니죠. 결혼식 때나 사진 찍기 위해 잠깐 빌려 입는 옷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젊은 층의 수요에 맞추다 보니 파스텔 톤이 인기를 끌고, 전통 색을 잃기도 해서 더욱 아쉽죠.”(박치환)
박씨는 한복 수요를 늘리기 위해 충장로 상인들과 뜻을 모으고자 한다. 그는 “충장로 상인들이 그동안 다져온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충장로 웨딩박람회’를 계획하고 있다”며 “충장로 사람들이 한복 다루는 실력이 상당하다. 보여주면 깜짝 놀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 영상=김혜림 기자 fingswoma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