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株式)이 주식(主食)이 될 때
![]() 안 태 균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
금융감독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신용 융자 증가율이 역대 최고치를 달성하였다고 한다. 특히 30대 미만의 경우는 162%에 달한다. 이는 빚을 내서까지 주식 투자를 하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그만큼 주식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주식 투자를 시작한 친구들을 쉽게 찾을 수 있어 주식 열풍이 단순한 수치에 머무는 현상이 아님을 절감하게 한다.
주식에 대한 관심 증가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일 테다. 기본적으로 낮은 금리와 집값 상승, 취업 시장의 침체 등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인들이다. 노동이나 예금과 같은 일반적인 저축 방식으로는 집을 구하거나 미래를 대비하기 힘들다. 그래서 고수익을 노려볼 수 있고, 하기에 따라서 비교적 쉬운 방식인 주식 투자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주식과 관련된 정보에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점도 주식 열풍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청년층의 경우 주식에 대한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쉽게 접하게 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이 줄어들고 사이버 소통에 의존하는 정도가 증가함에 따라 자연스레 주식에 대한 정보도 더 자주 접하게 됐다. 여기서 손해를 보는 경우 보다 이익을 보는 경우가 더 많이 게시된다는 점 또한 아직 주식을 시작하지 않은 청년들을 유인하는 요소가 된다. 나도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주식을 통해 돈을 벌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로써는 현재의 특수한 상황을 온전히 해명하기 어려워 보이며, 좀 더 깊이 있고 장기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주식에 대한 관심 증가는 곧 돈에 대한 관심 증가를 시사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청년층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주식 투자는 기업의 자금 조달을 증가시키고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투자자들에게 주식 투자의 목적은 당연히 돈을 얻기 위함이다. 돈이 목적인 주식 투자가 증가했다는 것은 또한, 삶 속에서 다른 가능성들에 비해 돈의 가능성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음을 의미한다. 한정된 재화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선택할 때는 곧 가치 판단이 이루어지며, 포기된 것보다 선택된 것의 가치를 높게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포기된 가치가 무엇이든, 선택된 가치는 분명 돈인 것이다.
당연 돈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 돈을 통해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하고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은 역시, 돈 자체를 다른 가치들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다. 돈이 다른 가치들과 가능성을 억누를 때 발생하는 불합리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문제를 직시하기 보다는 관련 주식 변동에 관심을 갖거나 초점을 두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는 개인의 관련성에 관한 문제로 볼 수 있고,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의 차이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계급을 나누며, 비인간적인 대우를 초래하기도 한다. 돈의 차이를 곧 인격의 차이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신이 하지 못한 것을 돈이 해낸다.” 약 170년 전 현대적 주식 시장의 탄생을 예견하기도 했던 칼 마르크스는 자신의 ‘경제학-철학 수고(手稿)’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돈은 가장 옳은 것이며 돈을 가진 사람도 옳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그로부터 2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어쩌면 더욱 예리하게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층의 경우 주식에 대한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쉽게 접하게 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이 줄어들고 사이버 소통에 의존하는 정도가 증가함에 따라 자연스레 주식에 대한 정보도 더 자주 접하게 됐다. 여기서 손해를 보는 경우 보다 이익을 보는 경우가 더 많이 게시된다는 점 또한 아직 주식을 시작하지 않은 청년들을 유인하는 요소가 된다. 나도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주식을 통해 돈을 벌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로써는 현재의 특수한 상황을 온전히 해명하기 어려워 보이며, 좀 더 깊이 있고 장기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당연 돈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 돈을 통해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하고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은 역시, 돈 자체를 다른 가치들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다. 돈이 다른 가치들과 가능성을 억누를 때 발생하는 불합리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문제를 직시하기 보다는 관련 주식 변동에 관심을 갖거나 초점을 두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는 개인의 관련성에 관한 문제로 볼 수 있고,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의 차이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계급을 나누며, 비인간적인 대우를 초래하기도 한다. 돈의 차이를 곧 인격의 차이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신이 하지 못한 것을 돈이 해낸다.” 약 170년 전 현대적 주식 시장의 탄생을 예견하기도 했던 칼 마르크스는 자신의 ‘경제학-철학 수고(手稿)’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돈은 가장 옳은 것이며 돈을 가진 사람도 옳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그로부터 2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어쩌면 더욱 예리하게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