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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미술관, 5·18 40주년 특별전 '별이 된 사람들'
쉴라 고우다 등 국내외 작가 24명 참여
관람객 참여 작품 많아 흥미로운 감상
새로운 시선으로 광주정신 탐색
2020년 10월 26일(월) 00:00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5·18 40주년 기념전 ‘별이 된 사람들’전은 흥미로운 기획으로 눈길을 끈다. 안두진 작 ‘마콤에서 벌어진 은밀한 파티’
“이 다음엔 또 어떤 작품을 만날까?”

호기심과 기대로 설레는 전시장이라니. 그것도 늘 부담감과 무거움에 짓눌리곤 하는 ‘5월 관련 전시’에서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전히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묵직하고, 때론 아프고,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지만 유쾌하고 다채로운 표현방식으로 전달되는 작품은 관람객들을 전시 깊숙이 끌어당긴다.

전시장에 들러 누군가에게 ‘사과의 편지’를 쓰고, 신음하는 돌덩이에 귀를 대보고, 수도꼭지를 틀어 시낭송을 들었다. 황무지에서 만나는 풀 한포기의 놀라움처럼, 전시 개막 당시 ‘씨앗’에 불과했다 ‘꽃’을 피워낸 작품을 만날 땐 경이로움을 느꼈고, 쌀 한봉지를 받아들고 전시장을 떠났다.

광주시립미술관(관장 전승보)이 주최한 5·18 40주년 특별전 ‘별이 된 사람들’(2021년 1월31일까지)전이 기존 5·18 전시의 틀을 깬 과감한 시도로 눈길을 끌고 있다. 사실, 지역에서 열리는 5월 관련 전시는 익숙한 구성과 패턴이 많았다. 이번 전시는 직접적인 고발 중심의 리얼리티 묘사 대신 은유와 암시로 광주정신의 ‘미래’를 엿보게 한다. 무엇보다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많고,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관람객의 참여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품의 변화를 계속 따라갈 수 있는 점도 재미있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24명(팀)이 참여해 회화, 사진, 설치, 미디어, 영상, 사운드, 생태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미술관의 로비에서부터 시작된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김현수 작가의 대형 조형물 ‘백련’은 관람객이 작품 주위에 배치된 방석에서 108배를 하는 퍼포먼스가 어우러지면 작품이 완성되는데 며칠 전 열린 퍼포먼스에 많은 관람객이 참여했다. 독일 등 현지에서 진행했던 영상을 함께 관람하면 훨씬 흥미롭다.

전시 두 달이 지나면서 씨앗에서 꽃을 피운 전원길 작 ‘2020백초를 기다리다’
생태미술가 전원길의 ‘녹색 별자리’와 ‘2020 백초를 기다리다’는 ‘시간’을 만나는 작품이다. 전남도청 등에서 채취한 흙과 전국 13개 휴게소에서 담아온 흙에 숨어 있던 씨앗이 싹을 틔우고 무성해지는 순간을 마주하니 작은 탄성이 나왔다.

1~4전시실을 쓰고 있는 이번 전시는 다양한 공간 변형과 작품 배치가 눈길을 끄는데, 첫 작품 안두진의 ‘마콤에서 벌어진 은밀한 파티’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해 관람객을 압도한다. 강렬한 붉은색이 시선을 빼앗는수상쩍은 느낌의 붉은 방과 여러 개의 문, 그 속에 담긴 수천개의 낯선 설치물이 어우러진 공간은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일 피터 바이벨의 영상 작품 ‘비디오 루미나’는 7대의 모니터를 통해 동일한 눈동자가 관람객들을 바라보는 작품이며 누군가의 신음을 반복 재생하는 ‘신음하는 돌’은 긴장감을 준다.

쑨위엔&펑위의 ‘No Way’는 어두운 공간에 배치된 하나의 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가 마주보고 있는 작품이다. 사람이 앉아 있지는 않지만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두 사람, 두 세력이 긴장감 있게 대치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달궈진 철판 위로 시간을 두고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 긴장감의 존재를 새삼 일깨운다.

쉴라 고우다 작 ‘다크룸-광주’
쉴라 고우다 작 ‘다크룸-광주’는 인도에서 도로공사용 아스팔트를 담던 드럼통으로 은신처같은 건축물을 지은 작품이다. ‘광주’ 버전은 광주에서 비슷한 소재의 드럼통을 구해 작업했으며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다크룸 입구엔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이 붙어있다. “비록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살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보고 있다.”

정정주의 ‘응시의 도시_광주’는 작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경험한 5·18의 기억과 연관돼 있다. 흰색의 ‘구 도청과 전일빌딩, 그리고 상무관’ 대형 모형을 전시하고 그 안에 카메라를 장착해 작품 앞을 서성이면 내 자신이 바로 도청에, 전일빌딩의 어느 한 공간에 머무는 느낌이 든다.

조덕현 작가의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는 관람객이 작은 돌을 하나 집어 작품 어딘가에 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했던 윤이상의 동명의 곡이 시종일관 흐르는 가운데 이승과 저승, 과거와 현재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룹 뮌의 ‘오디토리움(광주)’은 오랜 기억의 상징 수백개를 원형극장식으로 표현해낸 설치작품으로 기억의 영화관에 당도한 느낌을 준다.

천경우 작 ‘사과의 테이블’은 관람객이 누군가에게 ‘평생 하지 못했던 하나의 사과’를 적고 그 종이를 분쇄해 대형 거울 테이블 위에 쌓아놓는 퍼포먼스 작품이며 “당신은 누구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까?”등의 질문을 눈으로 읽고 귀로 듣는 ‘100개의 질문’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또 엄기백 작 ‘푸른 언덕’은 한 시대를 향유했던 ‘자개장’의 파편화 된 조각들과 흔적을 통해 그 안의 시간들을 마주하게 하며 흰 곡선 파이프와스피커 등으로 구성된 사운드아트 설치작품 정만영의 ‘순환하는 소리들’은 수도꼭지를 틀면 시인 김준태의 작품과 물소리, 새소리를 만날 수 있다.

그밖에 조정태의 회화 작품 ‘별이 된 사람들’, 문승현 곡 ‘그날이 오면’이 마음을 흔드는 오재형의 영상작품 ‘오월’도 눈길을 끈다. 오월을 겪었던 이들에게 들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한 장동 콜렉티브의 ‘오월식탁’을 관람한 후 받아든 쌀 한봉지로는 ‘오월음식’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무료 관람.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