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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 결혼식
2020년 10월 16일(금) 00:00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예비 신랑 신부들만큼이나 막막한 이들도 없을 것이다. 결혼식을 연기하는 경우가 많은 가운데, 식을 생략한 채 동거에 들어간 커플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저소득층이다. 예년 같으면 지자체마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부부를 대상으로 무료 결혼식을 열었지만 올해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결혼 특히 노총각·노처녀의 혼인 문제는 조선시대에도 왕이 직접 챙기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당시에는 음양의 조화를 맞추는 것이 국가의 주요 의무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경국대전’도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책무와 관련해 “국정 전반을 통할하고 음양을 다스리며 국가를 경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홍수나 가뭄 같은 재난은 물론 노총각·노처녀가 결혼하지 못하는 것 역시 음양의 부조화이자 나아가 임금의 부덕 탓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국가가 혼인 장려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노총각·노처녀의 기준은 몇 세였을까? 아동용 유교 교재인 ‘소학’의 해설서인 ‘소학집주’에 따르면 결혼은 여성 20세, 남성 30세에 하는 게 적당한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이 나이를 넘기면 노총각이나 노처녀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 때에는 서른이나 마흔 넘도록 혼인하지 못하는 백성이 늘어나자 “서울에서는 한성부가, 지방에서는 감사가 힘을 다해 (가정을)방문하라. 그들의 친척들이 혼수를 갖춰 때를 잃지 않도록 하라. 이 법을 어기는 자는 죄를 물라”라고 지시했다. 성종은 아예 전국의 노총각·노처녀 숫자를 모두 파악하는 전수조사를 명령했다. 이에 따라 전국 25세 이상 노처녀에 대한 ‘인구조사’가 시행됐으며, 그 가난의 정도에 따라 쌀과 콩을 혼수로 지급하는 등의 혼인 정책을 폈다. 정조도 서울의 노총각·노처녀 총 281명에게 결혼 자금으로 돈과 포목을 지원해 3개월 만에 남녀 한 명씩을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시켰다.

완도군이 오는 24일 코로나19로 결혼식을 취소했거나 연기한 예비부부와 형편상 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 등을 대상으로 완도항에서 무료 선상 결혼식을 갖는다고 한다. 방역에 애쓰는 가운데서도 어려운 주민을 살피는 세심한 행정이 아닐 수 없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