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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은 없다
2020년 10월 13일(화) 00:00
임혁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4년
고전 영화는 친한 친구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지금은 유명한 배우들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지금은 클리셰가 되어 버린 지겨운 것들의 첫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디 가서 아는 척하며 무언가 있어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추석 연휴 동안 유명한 고전들을 찾아봤다. 그들 중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는 20년 전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지금의 우리 사회와 오버랩이 되었다.

영화는 택배 회사 페덱스의 직원 척 놀랜드가 항공 운송 도중 재난을 만나 무인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살아서 탈출하기까지의 4년간의 이야기다. 재미있는 점은 척 놀랜드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택배를 잔뜩 실은 상태였기 때문에 표류 끝에 도착한 무인도에는 척뿐만 아니라 송장이 망가진 택배들과 송장에 손상을 입지 않은 단 하나의 택배도 함께 있었다. 송장이 망가진 택배는 나름대로 생존에 사용되었다. 송장이 무사한 단 하나의 택배 내용물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무엇인지 나오지 않았지만, 택배를 주인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척이 섬에서 4년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버팀목 중 하나였다.

척 놀랜드가 택배를 주인에게 돌려주기까지 걸린 4년만큼, 우리가 몇 번의 클릭으로 주문하는 택배들도 상당한 고난을 뚫고 올 것이다. 역대급이라 할 수 있는 장기간의 장마와 몇 번의 태풍, 택배 물량이 몰린 추석 그리고 코로나19를 뚫고 택배는 집 앞으로 배달되었다. 하지만 매체들을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는, 진짜 택배 기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다른 이유라 말한다. 노동 시간의 43%를 차지하는 분류 작업이야말로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이다. 분류 작업에 대한 적절한 임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과도한 육체적 노동으로 인하여 택배 기사의 건강권을 침해받는다는 것이 택배 업계의 주장이다.

업무 과중으로 과로사한 한 택배 노동자는 하루 평균 한 개에 3㎏나 되는 택배 250개를 처리해 왔다. 그 노동자는 오전 8시 반에 분류 작업을 시작해 오후 10시가 넘어야 할당된 택배 배송을 끝낼 수 있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일곱 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명꼴로 과로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택배 기사의 21%는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 척이 4년을 버틸 수 있게 도운 또 다른 것은 ‘윌슨’이다. 척이 배구공에 얼굴을 그리고 나뭇가지로 머리 장식을 해 만든 일종의 인형이다. 척은 윌슨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였고, 마지막 탈출의 순간까지 함께하려 했다. 윌슨이 파도에 떠내려가 함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걸고 구출에 나서기까지 했다. 겨우 배구공에 불과한 인형을 그토록 소중하게 대한 것은, 주인공에게 부여된 가장 큰 시련이 의식주 해결의 어려움이 아니라 외로움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무인도로 날려 보냈다. 개인들은 크든 작든 코로나 블루가 불러온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다.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윌슨이 되어준 이들이 물류업에서 종사하는 택배 기사를 포함한 필수 노동자의 존재다.

코로나19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떠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필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는 분야가 멈춘다면 사회는 큰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다. 택배가 우리에게 윌슨이 되어준 것처럼 우리 사회 역시 택배 기사를 포함한 필수 노동자들의 윌슨이 돼야 한다. 쿠팡맨은 결코 혼자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슈퍼맨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