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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진상조사위 ‘전남대 암매장’ 본격 조사
3공수 부대원 암매장지 좌표 진술 확보 과정서 정황 파악
광주역 시신 5구·전남대 정문 2구·시청 인근 등 18구 등
이학부 뒷산·공대 뒷산 등으로 옮겨 묻었을 가능성 조사
2020년 10월 12일(월) 00:00
1980년 5월 16일 전남대에서 진행된 횃불시위 <광주일보 DB>
대통령 직속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이하 5·18진상조사위)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력한 행방불명자 암매장지로 전남대를 지목, 본격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5·18 진상조사위는 최근 송선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장이 공개한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지 식별이 가능한 이른바 ‘8계단 좌표’에 대한 3공수여단 부대원 진술〈광주일보 10월 8일 1면〉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전남대 암매장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5·18진상조사위는 11일 5·18 당시 민간인 학살과 행방불명자 등이 전남대 교내에 암매장된 정황을 담당부서인 조사2과를 통해 공식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조사위가 착수한 과제는 모두 3건으로, ▲전남대 이학부 뒷산 암매장 ▲전남대 공대 뒷산 암매장 ▲전남대 교정 여고생 추정 암매장 등이다.

‘이학부 뒷산 암매장’ 사건의 경우 희생자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로, 지금까지 알려진 희생자 이성귀씨가 맞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계엄군 철수 후 전남대 교정에서 고등학생 시신을 발견, 소지품과 고교생 사망자 현황 등으로 이씨로 추정했지만 유족, 선배 등 관련자 진술로 다른 희생자일 가능성이 높아 재조사를 진행중이다.

진상조사위는 또 지난 1995년 전두환·노태우 내란죄 관련 검찰조서와 2007년 국방부과거사 진상조사 당시 3공수여단 군의관과 의무병의 진술을 분석한 결과, 1980년 민주화운동 당시 5살 가량된 어린이가 전남대 공대 뒷산에 암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중이다.

당시 3공수여단 본부대장인 A소령은 지난 1995년 전두환·노태우 내란죄 등과 관련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호송한 차량 문을 열었을 때 2~3명이 밟혀 죽어 있었던 것을 확실히 기억한다”고 검찰 진술조서에 남겼다는 게 조사위 설명이다.

3공수는 1980년 당시 주둔지인 전남대로 부상·사망자를 데려왔다가 옛 광주교도소로 후송했다는 점을 들어 이미 사망한 시신들을 전남대 내에 암매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조사위 추정이다.

조사위는 특히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발포로 인한 시신 5구, 21일 전남대 정문 앞 발포로 숨진 시신 2구, 당시 광주시청 인근 18구 시신 등이 전남대로 옮겨져 묻혔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들 25구의 시신에 대한 검시 자료 분석도 진행중이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종합보고서(2007)에 따르면 3공수여단의 ‘광주소요사태 진압작전’(전투상보)에는 작전 결과에 따른 피해로 ‘민간인 2명 사망, 5명 부상’(폭도의 차량공격에 의한 자체 피해)이라고 적혀 있다.

3공수여단은 지난 1980년 5월20일 9시50분께 광주역에서 경계중인 제3공수여단 16대대 정관철 중사가 시위대의 차량에 깔려 사망하자 최세창 여단장(준장)의 지시로 각 대대에 M-16 실탄이 배부됐다.

또 전남대에 주둔한 3공수여단은 정문을 돌파한 시위대를 향해서 사격을 실시했다는 군 문건도 존재한다.

1988년 3월께에 작성된 군 문서에는 계엄군의 최초 사격을 5월 21일 10시 전남대 정문이라고 적혀있다. 당시 문건에는 사격은 무장시위대 10여만명이 차량 100여대를 앞세운 공격에 따른 대응 사격이라는 내용도 담겨있다.

5·18진상조사위 관계자는 “ 현재 피해자와 목격자, 3공수 장병들의 진술 등을 확인하고 분석하는 작업중”이라며 “가해자들인 부대원들의 진술 거부가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