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미지로 되돌아본 월간 통권 300호
작가 작품에서 시각적 이미지로…예향 표지, 갤러리가 되다
오승윤 화백 창간호
양계남 작가 휴간호
진양욱·조방원·황영성 등
지역 원로·중진작가
160여명 예향 표지 장식
서예가 김상필 선생
오승윤 화백 창간호
양계남 작가 휴간호
진양욱·조방원·황영성 등
지역 원로·중진작가
160여명 예향 표지 장식
서예가 김상필 선생
![]() 창간호 (1984년 10월호) |
◇“‘예향’표지는 검증된 작가 인증”
“안동포 올 사이로 스며든 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 정정당당하게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모두를 전율토록 통쾌하게 만든다. 우리 민족의 가능성은 더욱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남도인의 두뇌가 총명하고 체력의 강인함을 전 세계에 보였던 것은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던가. 문화의 개선을 월간예향에 기대한다.”
광주일보 자매지 ‘월간 예향’이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인 1984년 10월 창간호 표지 그림을 장식했던 오승윤 화백(1939~2006)이 남긴 말이다.
예향(藝鄕) 전라도의 전통과 문화, 예술, 풍류와 멋을 아는 남도인들의 삶과 애환을 다뤘던 ‘월간 예향’은 당시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표지로 선정했다. 오 화백의 작품을 시작으로 2002년 2월 209호까지 남도 출신 160여명의 작가들이 예향의 얼굴을 장식했다.
지역 뿐 아니라 전국에서 활동했던 원로·중진 작가들은 표지 사이즈에 맞춰 ‘예향’만을 위한 작품을 그렸으며, 당시 ‘예향’ 표지화로 선정돼야 화가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오방색의 대가’로 불렸던 오승윤 화백은 화순 출신이다. 아버지(오지호)와 형(오승우) 모두 이름난 화가였으며, 특히 오 화백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국 서양화단의 거장으로 평가받았다. 오 화백은 표지화 ‘개선’을 통해 월간 예향이 이뤄나갈 문화 개선을 응원했다.
창간 후 첫 새해를 맞은 1985년 1월호 표지화는 진양욱 화백의 무등산 그림 ‘새아침’이었다. 진 화백은 “호남의 영봉 무등산에 을축년의 새아침이 밝았다.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무등산, 그 무등산은 백번을 그려도 질리지가 않고 새롭기만 하다. 그릴 때 마다 정겹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무등산, 무등산에 서린 새아침의 햇살은 눈부시기만 하다”는 작가의 말을 남겼다.
작가는 당시 붓이 아닌 스펀지를 사용해 면과 색채를 그리며 자연의 겉모습이 아닌 숲의 정기와 분위기까지 담아내려고 시도했다. 그의 제자였던 김익모 교수는 2016년 ‘故 진양욱 회고전’에서 “당시 보수적이었던 화단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기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진 화백은 그러나 불행히도 작품이 실린 1월호 잡지를 받아보기도 못한 채 1984년 12월 16일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타계했다.
1991년 1월호 표지화는 ‘남종화의 거장’ 아산 조방원 선생의 ‘봉래일출’. 동산에 높이 뜬 환한 태양을 담은 그림에는 ‘새해에는 모든 것이 밝고 순수하고 씩씩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신안 출신으로 소치 허련, 남농 허건을 잇는 남종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조방원 선생은 수묵산수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남도의 정서에 맞는 수묵화의 경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14년 5월 향년 88세로 타계했으며, 곡성에는 선생이 기증한 부지와 평생 모은 소장품으로 건립된 ‘아산 조방원 미술관’(옛 옥과 전남도립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예향 표지화로 여러차례 선정됐던 황영성 작가는 그림을 통해 화합과 희망을 전달하고자 했다. 지령 200호였던 2001년 5월호 표지화 ‘가족 이야기’에서는 마음에 잔영처럼 자리한 우리네 공동체의 기억을 화사한 모습으로 그렸고, 1996년 신년호(지령 136호) 표지화 ‘화합과 희망’은 더 잘살고 더 고상하게 살고 싶어하는 바람을 넘어 새, 꽃, 자연,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삶의 희망을 담아내기도 했다.
휴간 소식을 채 전하지 못한 채 펴냈던 휴간호(2002년 2월호) 표지화는 양계남 작가의 ‘달리는 말을 타다’였다. 의재 허백련 선생에게 사사받아 스승의 예술세계를 기틀로 호남 남종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양 작가는 현재까지도 조선대 미술대학 명예교수와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비운의 천재화가’ ‘고독한 농부화가’로 불렸던 진도 출신 한국화가 석현 박은용(1944~2008), 리얼리즘 화풍을 선보였던 영암 출신 서양화가 이강하(1953~2008), 한국 수채화의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던 광주 출신 서양화가 배동신(1920~2008), 광주를 대표하는 원로화백 강연균(1941~), 특유의 색채로 ‘꽃과 여인, 태양의 작가’로 불리는 서양화가 임직순(1921~1996), ‘빛의 화가’로 유명한 미술평론가이자 서양화가인 우제길(1942~) 등 당대 이름을 떨치던 화가들이 예향의 표지를 장식해주었다.
그림과 함께 눈에 띄었던 건 한자로 쓰인 ‘월간 예향’ 제호다. 서예가 경암 김상필 선생의 글씨를 흰색으로 변형한 ‘藝鄕’은 단정하면서도 강렬해 멀리서 보아도 월간 예향임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김상필 선생(1914~1995)은 진도 출신 소전 손재형 선생의 제자로, 국전 서예부문 대통령상, 문교부장관상, 국전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시대 트렌드 맞춘 시각적 이미지 중점
11년만에 돌아온 월간 ‘예향’은 표지에서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제호는 기존 한자를 벗고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입힌 한글 서체로 변형시켰다. 기존 예향 그대로를 기다리는 독자들도 많았지만 종합지에서 문화예술전문 잡지로 틀을 바꾼 만큼 표지 역시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택했다.
특정 이미지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당월호 특집이나 기획 등 문화현장 곳곳에서 찾아낸 영향력 있는 사진이나 계절에 어울리는 느낌의 이미지를 커버스토리로 선택했다. 2013년 4월 복간호(210호)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을 앞두고 기획한 특집 ‘불붙은 아시아의 문화전쟁’ 싱가포르 현지 취재를 통해 촬영한 아시아문명박물관 전시 작품 ‘shroud’(작카이 시리뷰트르 작, 태국)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아시아문화전당 내외부 이미지나 양림동 근대문화유산, 광주비엔날레, 책으로 가득찬 도서관, 복합문화공간 등 문화예술과 연관된 다양한 곳의 사진이 표지를 장식했다. 2014년 1월호는 특집 ‘예향, 문화융성의 해를 열다’에 맞춰 9년만에 완공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빛의 정원’에서 바라본 하늘, 2017년 4월호 ‘빛고을, 미디어아트를 켜다’ 특집에 맞춰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광주 플랫폼’ 미디어아트놀이터에 조성된 ‘바람의 공간’ 등이 눈에 띈다.
작가들의 작품이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2015년 5월호(235호)는 커버스토리 ‘우리 시대, 가족의 얼굴’에 맞춰 황영성 화백의 작품 ‘가족 이야기’의 부분 이미지가 실렸고, 2018년 7월호(273호) 표지는 최영훈·손연자 부부전 ‘동행’에 선보인 최 작가의 작품 ‘봄꽃’이 장식했다.
2018년 9월호(275호)는 화가 한희원이 조지아·아르메니아 여행길에서 마주한 자연과 사람의 숨결을 담은 작품 ‘신화의 꽃’, 2019년 1월호(279호)는 ACC에서 열린 ‘우제길의 빛’전 출품작 ‘LIGHT-11A’ (부분), 2019년 11월호(289호) 표지는 2019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에서 만난 류호열 작가의 ‘나무’가 선정됐다.
통권 300호를 맞은 ‘월간 예향’은 앞으로도 남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넉넉한 인심, 시대의 흐름에 맞춘 글로컬(Glocal)한 문화 소식, 관광천국 전라도의 다양한 소식 등을 담는 품격있는 문화예술매거진을 만들어 갈 것을 약속한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안동포 올 사이로 스며든 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 정정당당하게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모두를 전율토록 통쾌하게 만든다. 우리 민족의 가능성은 더욱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남도인의 두뇌가 총명하고 체력의 강인함을 전 세계에 보였던 것은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던가. 문화의 개선을 월간예향에 기대한다.”
예향(藝鄕) 전라도의 전통과 문화, 예술, 풍류와 멋을 아는 남도인들의 삶과 애환을 다뤘던 ‘월간 예향’은 당시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표지로 선정했다. 오 화백의 작품을 시작으로 2002년 2월 209호까지 남도 출신 160여명의 작가들이 예향의 얼굴을 장식했다.
지역 뿐 아니라 전국에서 활동했던 원로·중진 작가들은 표지 사이즈에 맞춰 ‘예향’만을 위한 작품을 그렸으며, 당시 ‘예향’ 표지화로 선정돼야 화가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오방색의 대가’로 불렸던 오승윤 화백은 화순 출신이다. 아버지(오지호)와 형(오승우) 모두 이름난 화가였으며, 특히 오 화백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국 서양화단의 거장으로 평가받았다. 오 화백은 표지화 ‘개선’을 통해 월간 예향이 이뤄나갈 문화 개선을 응원했다.
창간 후 첫 새해를 맞은 1985년 1월호 표지화는 진양욱 화백의 무등산 그림 ‘새아침’이었다. 진 화백은 “호남의 영봉 무등산에 을축년의 새아침이 밝았다.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무등산, 그 무등산은 백번을 그려도 질리지가 않고 새롭기만 하다. 그릴 때 마다 정겹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무등산, 무등산에 서린 새아침의 햇살은 눈부시기만 하다”는 작가의 말을 남겼다.
작가는 당시 붓이 아닌 스펀지를 사용해 면과 색채를 그리며 자연의 겉모습이 아닌 숲의 정기와 분위기까지 담아내려고 시도했다. 그의 제자였던 김익모 교수는 2016년 ‘故 진양욱 회고전’에서 “당시 보수적이었던 화단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기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진 화백은 그러나 불행히도 작품이 실린 1월호 잡지를 받아보기도 못한 채 1984년 12월 16일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타계했다.
1991년 1월호 표지화는 ‘남종화의 거장’ 아산 조방원 선생의 ‘봉래일출’. 동산에 높이 뜬 환한 태양을 담은 그림에는 ‘새해에는 모든 것이 밝고 순수하고 씩씩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신안 출신으로 소치 허련, 남농 허건을 잇는 남종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조방원 선생은 수묵산수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남도의 정서에 맞는 수묵화의 경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14년 5월 향년 88세로 타계했으며, 곡성에는 선생이 기증한 부지와 평생 모은 소장품으로 건립된 ‘아산 조방원 미술관’(옛 옥과 전남도립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예향 표지화로 여러차례 선정됐던 황영성 작가는 그림을 통해 화합과 희망을 전달하고자 했다. 지령 200호였던 2001년 5월호 표지화 ‘가족 이야기’에서는 마음에 잔영처럼 자리한 우리네 공동체의 기억을 화사한 모습으로 그렸고, 1996년 신년호(지령 136호) 표지화 ‘화합과 희망’은 더 잘살고 더 고상하게 살고 싶어하는 바람을 넘어 새, 꽃, 자연,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삶의 희망을 담아내기도 했다.
![]() 휴간호 (2002년 2월호) |
이외에도 ‘비운의 천재화가’ ‘고독한 농부화가’로 불렸던 진도 출신 한국화가 석현 박은용(1944~2008), 리얼리즘 화풍을 선보였던 영암 출신 서양화가 이강하(1953~2008), 한국 수채화의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던 광주 출신 서양화가 배동신(1920~2008), 광주를 대표하는 원로화백 강연균(1941~), 특유의 색채로 ‘꽃과 여인, 태양의 작가’로 불리는 서양화가 임직순(1921~1996), ‘빛의 화가’로 유명한 미술평론가이자 서양화가인 우제길(1942~) 등 당대 이름을 떨치던 화가들이 예향의 표지를 장식해주었다.
그림과 함께 눈에 띄었던 건 한자로 쓰인 ‘월간 예향’ 제호다. 서예가 경암 김상필 선생의 글씨를 흰색으로 변형한 ‘藝鄕’은 단정하면서도 강렬해 멀리서 보아도 월간 예향임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김상필 선생(1914~1995)은 진도 출신 소전 손재형 선생의 제자로, 국전 서예부문 대통령상, 문교부장관상, 국전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을 역임했다.
![]() 복간호 (2013년 4월호) |
![]() 창간호부터 휴간호까지의 주요 표지들. |
◇시대 트렌드 맞춘 시각적 이미지 중점
11년만에 돌아온 월간 ‘예향’은 표지에서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제호는 기존 한자를 벗고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입힌 한글 서체로 변형시켰다. 기존 예향 그대로를 기다리는 독자들도 많았지만 종합지에서 문화예술전문 잡지로 틀을 바꾼 만큼 표지 역시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택했다.
특정 이미지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당월호 특집이나 기획 등 문화현장 곳곳에서 찾아낸 영향력 있는 사진이나 계절에 어울리는 느낌의 이미지를 커버스토리로 선택했다. 2013년 4월 복간호(210호)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을 앞두고 기획한 특집 ‘불붙은 아시아의 문화전쟁’ 싱가포르 현지 취재를 통해 촬영한 아시아문명박물관 전시 작품 ‘shroud’(작카이 시리뷰트르 작, 태국)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아시아문화전당 내외부 이미지나 양림동 근대문화유산, 광주비엔날레, 책으로 가득찬 도서관, 복합문화공간 등 문화예술과 연관된 다양한 곳의 사진이 표지를 장식했다. 2014년 1월호는 특집 ‘예향, 문화융성의 해를 열다’에 맞춰 9년만에 완공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빛의 정원’에서 바라본 하늘, 2017년 4월호 ‘빛고을, 미디어아트를 켜다’ 특집에 맞춰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광주 플랫폼’ 미디어아트놀이터에 조성된 ‘바람의 공간’ 등이 눈에 띈다.
![]() 복간 이후 발간된 ‘예향’ 주요 표지들. |
2018년 9월호(275호)는 화가 한희원이 조지아·아르메니아 여행길에서 마주한 자연과 사람의 숨결을 담은 작품 ‘신화의 꽃’, 2019년 1월호(279호)는 ACC에서 열린 ‘우제길의 빛’전 출품작 ‘LIGHT-11A’ (부분), 2019년 11월호(289호) 표지는 2019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에서 만난 류호열 작가의 ‘나무’가 선정됐다.
통권 300호를 맞은 ‘월간 예향’은 앞으로도 남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넉넉한 인심, 시대의 흐름에 맞춘 글로컬(Glocal)한 문화 소식, 관광천국 전라도의 다양한 소식 등을 담는 품격있는 문화예술매거진을 만들어 갈 것을 약속한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