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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여행 : 마스크 벗고 떠나는 기차여행을 꿈꾸어 본다
2020년 09월 03일(목) 00:00
레오폴드 에그 작 ‘여행 친구’
평소에 여행을 즐겨하지 않는 편이어서 스스로 집콕이나 방콕을 더 좋아하는 집순이에 가까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로 안가고 떠나지 않았던 것과 사회적 금기로 못가고 가지 않아야하는 것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주위에서도 이 즈음이면 콧바람 쐬며 훠이훠이 다녀온 여행담으로 행복해하던 이들이 코로나로 발이 묶여 답답함에 우울해한다.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오거스터스 레오폴드 에그(1816~1863)의 ‘여행 친구’(1862년 작)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이미 기차에 몸을 싣고 있는 듯 마음 설레게 한다. 똑같이 옷을 갖춰 입은 것으로 보아 아마 자매일 것으로 짐작되는 두 여성이 기차를 타고 여행 중인 것 같다. 옆 좌석에 한 아름의 꽃다발과 과일바구니는 어느 곳의 방문할 누군가를 위해 준비했는가 보다.

왼쪽 여성은 모자와 장갑을 벗고 편안한 자세로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있다. 반면 오른쪽 여성은 꼭 맞는 장갑을 끼고 잠든 여행친구가 못마땅한지 샐쭉한 표정으로 독서에 집중하고 있다. 열린 창을 통해 멀리 바깥 풍경이 보이는데 그림 속 풍경은 화가가 만년에 나빠진 건강 탓에 온화한 기후를 찾아다녔던 지역 중의 하나인 모나코 북부 몬테카를로 근처의 도시 망통일 것으로 추측된다.

19세기에 철도가 발달했던 유럽에서는 그 덕택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기차여행길에 책은 완벽한 동반자가 되었다. 특히 기차 안에서의 독서는 유행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풍조를 두고 당시 학자들은 기차여행자들이 독서하거나 잠드는 바람에 창밖의 풍경을 놓치는 것을 빗대어 삶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경고를 할 정도였다.

집 떠나면 고생길일지라도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딴 세상을 마주할 수 있었던 그 좋았던 날들이 다시 올 수 있을까. 마스크 벗고 동행자와 커피 한잔 마시며 담소하며 떠나는 기차 여행을 꿈꾸어본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관·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