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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유네스코 창의도시 사용서’
2020년 08월 05일(수) 00:00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유네스코 창의도시 이천시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지난 주말, 광주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삼십 분쯤 달려 서이천 IC로 들어서자 큼지막한 홍보 조형물이 눈에 띈다. 연한 갈색톤의 도자기 모양이 여타 도시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도심이 가까워지면서 유네스코 창의도시의 ‘분신’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주요 도로에는 도자기 가로등이 은은한 자태를 뽐내고, 도로를 가로 지르는 육교에는 형형색색의 도자기 조형물이 내걸렸다.

무엇보다 유네스코 공예 창의도시의 ‘실체’를 느낄 수 있었던 곳은 도자문화 복합공간인 세라피아였다. 이천의 명승지인 설봉공원에 자리한 세라피아는 지난 2001년 세계 도자기엑스포 개막에 맞춰 문을 연 이후 경기 세계 도자비엔날레와 이천 도자기축제의 발신지가 됐다. 세라피아는 도자기를 의미하는 ‘세라믹’과 낙원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합성어다.

설봉공원에는 세계 도자비엔날레와 도자기엑스포의 ‘역사’를 반추할 수 있는 조각 작품과 도자기 소재로 제작된 벤치나 테이블이 즐비했다. 특히 인상적인 건 교육·체험 전용 공간인 ‘세라피아 창조센터’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전만 같진 않겠지만, 도자기의 모든 것을 보고 즐기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름 그대로 ‘도자기 천국’이었다. 지난 2010년 유네스코 공예 창의도시에 가입된 이후 10년간 도자축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도자(陶磁)도시의 정체성을 시민들에게 심어 주었기에 이런 천국이 가능했을 것이다.



도자기 천국 이천시의 경우



이제는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또 다른 창의도시 경남 통영으로 가 보자.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로 선정된 통영시는 아시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로 불리는 통영국제음악제(TIMF)를 매개로 도시 전역에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을 퍼뜨리는 ‘음악의 일상화’에 주력하고 있다. 통영이 음악 창의도시로 성장한 데에는 시민들의 일상과 미래 세대들을 겨냥한 예술 교육의 힘이 컸다. 통영시는 TIMF의 주무대인 통영 국제음악당을 기반으로 특화된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TIMF의 무대에 서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본공연에 앞서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스쿨 콘서트’를 개최한다. 한해 평균 2만여 명의 학생들이 콘서트에 초대된다고 하니 통영의 음악 저변이 얼마나 탄탄한지 짐작이 간다.

올해는 광주가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지정된 지 6주년이 되는 해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라는 명칭은 문학·음악·공예·디자인·영화·미디어아트·음식 등 7개 분야에서 뛰어난 창의성을 도시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도시에 부여된다. 현재 광주·서울·부산 등 국내 10개 도시를 포함 80개국 246개 도시가 가입돼 있다. 지난 2014년 광주시는 국내 유일의 미디어아트 도시라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이후 광주문화재단 미디어사업단을 주축으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핵심 시설인 에이엠티(AMT: Art and Media Technology)착공과 홀로그램 극장 오픈, 유네스코 창의벨트 추진 등 인프라 조성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뿐만이 아니다. 광주시는 최근 창의도시 사업의 중장기 로드맵을 구축하기 위해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기본계획 및 2020시행계획 수립’과 ‘AMT 센터 운영 방안’ 등 핵심 용역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두 개의 프로젝트는 향후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의 방향과 성패를 가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표다.



예술이 일상에 스며들어야



광주시는 컨설팅 회사 ‘더킹핀’이 제안한 ‘시민의 일상에 스민 창의도시’, ‘사람·예술·산업이 빛나는 창의도시’, ‘시민과 함께 세계로’ 등 세 개의 비전안 가운데 우선 순위를 정해 ‘전략적’으로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는 곧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의 일상화·산업화·세계화라는 선택지 중에서 어떤 것을 먼저 추켜드느냐에 따라 광주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단기 목표로 산업화에 무게를 둘 경우 시민 향유나 교류 활동보다는 성과 중심의 사업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 개의 비전안은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의 완성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핵심 퍼즐 조각이다. 따라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식으로 어느 하나만을 중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지속 가능한 창의도시를 위해서는 광주시의 명확한 비전과 장·단기 로드맵이 하루 빨리 제시돼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특히 시민과 미디어아트의 접점을 찾는 창의도시의 일상화는 매우 시급하다. 미디어아트라는 생소한 장르에 머뭇거리는 대중을 대상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예술적 공감대가 선행돼야 한다. 컬렉터가 미술 시장의 흥행을 좌우하듯, 창의도시의 성공 역시 미디어아트에 ‘눈을 뜬’ 시민들의 참여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더킹핀’이 지역의 전문가 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낮은 인식을 창의도시 사업의 걸림돌로 꼽았다. 또한 ‘과정’보다 ‘결과’ 위주의 전시행정이 걸림돌이라는 응답도 많았다.

“시민들이 내 공간이라는 인식, 내가 즐기는 전시라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교육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야 한다.” 2년 전 세계 최고의 미디어아트센터 독일 ZKM의 한 디렉터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건넨 메시지다.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지 않은가. 눈치 빠른 이라면 이미 답을 알 것 같긴 하다. 광주시의 ‘슬기로운 선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