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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짜장면과 쌀국수
2020년 07월 30일(목) 00:00
인류는 ‘면류’(麵類)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유럽에서 아시아·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면은 보편적인 인류의 음식이다. 한국인의 면 사랑은 유별나다. 특히 인스턴트 라면 소비량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나는 하루 한 끼는 면을 먹는다. 해장 음식의 으뜸도 면이다. 한때는 라면과 짬뽕이었고, 요즘은 냉면으로 해장한다. 뭐니 뭐니 해도 오랫동안 가장 좋아하던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짜장면은 외식의 왕으로 군림했다. 졸업과 입학, 그리고 뭔가 축하할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으레 짜장면을 먹었다. 화교 주인과 요리사가 알 수 없는 중국어로 대화하는 그런 집들이 좋았다. ‘본토’의 맛이라고나 할까. 이국의 정취가 배어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주문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주방에 주문을 넣는 중국어의 악센트, 수타면을 쿵쿵 치는 소리, 그리고 엽차와 단무지 등은 우리가 기억하는 중국집의 소묘였다. 중화요리는 한국인들이 이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70년대 이전에는 화교의 고유 기술이었다.

역사의 시계를 멀리 돌려 보자. 1882년, 조선의 수도 한성에 임오군란이 터졌다. 분노한 군인들이 시내 곳곳의 관청과 세도가들의 집을 습격하고, 신식 군대를 조련하던 일본의 공사관에도 쳐들어갔다. 다급해진 조선 조정의 요청을 받은 청나라는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3000여 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임오군란의 수습 국면에서 두 나라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라는 조약을 맺었다. 조약의 핵심은 청나라 자본이 조선에서 우월한 지위를 갖고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난을 진압하기 위해 남의 나라 군대를 불러들인 조선 조정의 어이없는 바보짓이었다.

이때 처음 들어온 중국 상인이 40여 명이었는데, 이 땅에 뿌리내린 ‘화교’의 시작이었다. 화교는 장사꾼만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식민 강권 통치기에 기술자, 노동자, 농민도 속속 건너와서 조선 반도에서 일하게 된다. 청요릿집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고, 산둥성 출신의 솜씨 좋은 요리사들이 대활약한다. 짜장면 시대의 개막이었다.

화교 요리사들은 대형 요릿집은 물론이고 짜장면과 만두 같은 간이 음식을 파는 ‘호떡집’을 전국에 모세혈관처럼 퍼뜨려갔다. 우리가 짜장면의 추억을 갖게 된 역사의 시작이었다. 짜장면은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게 바뀌어 외식 시장의 최강자가 되었다. 이후 배달업의 주력이 되었고, 우여곡절 많았던 한국의 현대사에 중요한 상징으로 편입되었다.

짜장면은 아직 건재하다. 그러나 빛나던 영화의 시대는 옛말이 되었다. 현재 한국 내 중국인은 92년 한중 수교 이후에 들어온 화교가 대부분이다. 학계에서는 이들을 옛 화교와 구별하기 위해 ‘신화교’라 칭한다. 신화교는 짜장면을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즐겨 먹지 않는다. 물론 식당을 열어도 짜장면이 아니라 당대 중국에서 인기 있는 음식들을 판다. 양꼬치와 마라탕, 란주면이 그것이다.

얼마 전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보령시에 갔다. 노포(老鋪)들과 사라져 가는 대폿집들이 나그네를 반긴다. 요즘 이런 지역의 도시 식당가에는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베트남식당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 시집와서 사는 새댁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쌀국수집을 내는 것이다. 한국 농축산업과 어업에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진출해 일하고 있다. 지역에 베트남인 커뮤니티가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자국의 음식점이 생기고 성업하게 마련이다.

싹싹한 베트남 새댁들이 홀에서 서빙하고 요리도 한다. 보령 한 식당의 쌀국수와 요리의 맛은 기막힐 정도였다. 이른바 ‘본토’의 맛인 셈이다. 고수와 타이바질 같은 남방의 향신채도 듬뿍 내어준다. 구수한 ‘고깃국물’에 매운 고추도 들어서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이런 식당들이 한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통계청 인구 통계 2019년 기준으로 국제결혼 건수는 2만4000여 건. 그중에서 1등은 베트남이다. 베트남 새댁들이 한국의 외식시장을 흔들지도 모른다. 쌀국수는 이미 단체 급식에도 나오는 대중음식이 되었다. 무서운 성장세의 쌀국수가 과연 짜장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음식 칼럼니스트>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가 테마칼럼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ICIF에서 요리를 공부한 박 셰프는 ‘노포의 장사법’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보통날의 파스타’ 등의 책을 썼습니다. 박 셰프는 식문화를 사회·문화적 시선으로 풀어내는 칼럼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만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