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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종욱 WHO 사무총장을 기억한다
2020년 07월 22일(수) 00:00
박 행 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는 머리글자를 따서 WHO로 부르는데 유엔(UN) 산하의 대표적인 국제기구이다. 정확하게 17년 전 오늘, 2003년 7월 22일에 이종욱 박사가 제 6대 WHO 사무총장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기구 수장이었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 유엔의 날 기념행사 사진에는 50여 명 어린이들이 다양한 복장들을 하고 있는데 그는 유엔 직원 옷차림으로 맨 앞줄에 혼자 서 있다. 공대에 입학했으나 군 복무를 마치고 의대에 진학하여 뒤늦게 의사가 되었다. 경기도 의왕시의 한센병 환자 요양소에서 자원봉사로 시작한 한센병과의 인연은 1983년, 그를 WHO로 인도했고 백신 프로그램 책임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백신의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의 취임 몇 달 전인 2002년 11월, 중국 광동성에서 시작한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는 야생 동물에 서식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아가서 심한 폐렴 증상을 나타내는 새로운 전염병으로 밝혀졌다. 코로나 02인 셈이다.

그가 사무총장직을 맡으면서 “옳은 일을, 적절한 곳에서, 옳은 방법으로 한다”가 행동 목표였고 삶의 방식이었다. 첫 번째 시도는 개발도상국 300만 에이즈(AIDS) 환자에게 2005년까지 치료제를 공급하는 ‘3 by 5’ 프로젝트였다. 그 목표치는 2008년에 달성되었다.

그는 2003년 9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서태평양 지역위원회 제54차 회의에서 사스의 재발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작금의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그가 세계보건기구의 수장으로서 선견자다운 식견을 가졌음을 새삼 깨닫는다.

사스 발발 1년 후인 2003년 12월부터 유행한 조류인플루엔자(AI, Avian Influenza)는 바이러스가 조류에서 사람으로, 그리고 사람 대 사람 감염을 일으켰다. 감염 종식을 위하여 엄청난 숫자의 가금류들을 살처분했고 이는 거의 매년 되풀이 된다.

사무총장 취임을 전후하여 닥친 이러한 위험 상황을 직시한 그는 전염병 발생 현황을 시시각각 살피고 대응 전략을 세우는 상시 운영 체제로써 ‘전략보건운영센터(SHOC, Strategic Health Operations Center)’를 출범시켰고 이는 ‘J W LEE Center‘라고도 불렀다.

일부에서는 신종 전염병에 대한 경고를 너무 자주 하여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을 겁준다며 그를 양치기 소년에 비유하기도 했다. 전 세계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그의 경고를 심심해서 장난치는 양치기 소년에 빗댄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을 아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전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WHO 대유행 단계’는 6단계로 나뉜다. 동물 바이러스가 인체 위험도가 낮은 1단계부터 가장 위험한 것은 6단계인 팬데믹(Pandemic)이다. ‘pan’은 그리스어로 모두, ‘demic’은 사람을 뜻한다. 팬데믹은 바이러스가 모든, 또는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상태이며 우리말로는 ‘감염병 세계적 유행’이다.

WHO가 코로나 19를 팬데믹으로 규정한 것은 금년 3월 11일로, 114개국에서 확진자 11만 8천여 명이 발생한 시점이었다. 중국 우한에서 첫 번째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고 추정되는 작년 11월 이후, 4개월 동안 확진자들은 세계 각국으로 바이러스를 실어 나른 셈이다. 이틀 전 통계에 의하면 185개국에서 총 확진자가 1436만 4718명, 사망자가 60만 3872명이었다. 수치는 매일 상승되니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형국이 되었다.

앞으로는 전염병 감염 국가가 두 자리 숫자가 되면 WHO는 자동적으로 팬데믹을 선언하고 감염 지역을 봉쇄함으로 세계적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이종욱 총장의 “옳은 일을, 적절한 곳에서, 옳은 방법으로 한다”는 말의 실천이 새삼 절실하다.

애석하게도 그는 취임 3년 만에 61세의 나이로 임기 중에 뇌출혈로 순직했다. 그의 부재가 어느 때보다 더욱 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