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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운동선수, 성적지상주의에 목맨 폭력의 대물림 언제까지
2020년 07월 16일(목) 00:00
말레비치 작 ‘운동선수’.
하마터면 이에리사나 현정화처럼 세계적인(?) 탁수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학교 탁구코치에게 선수후보로 발탁되어 집중훈련을 시작했었기 때문이다. 겨울방학 첫날, 코치에게 펜 홀더와 쉐이크 핸드 등 라켓 잡는 법과 기본 폼을 배우고 즐겁게 연습을 마쳤는데 짧은 커트머리 6학년 선배가 “야, 너, 이리, 와 봐!”라며 불러 세웠다. 처음 운동 시작한 후배들을 붙들고 군기를 잡기 위해 기합을 준다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탁구 안하면 그만이지…’하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가버렸다.

가끔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선배에게 기합 받고 좀 두들겨 맞고 견뎠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상상해본다. 폭력의 예감만으로도 몸서리치게 싫었기 때문에 지금도 어린 날의 내게 도망치길 참 잘했다며 칭찬해주곤 한다.

최근 철인 3종 경기 선수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 선배운동 선수의 가혹행위를 접하면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 40여 년 전 우리 어린 시절은 인권보다는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해서 그랬다 치더라도 선진국 대열에서도 내로라할 정도인 지금에 와서도 비인권적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니 통탄스럽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지만 스포츠지도자들에게는 건강하고 건전한 정신과 마음이 무엇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운동선수가 주요한 모티브였던 고대 그리스 이래로 미술에서 드물게 운동선수의 이미지가 아름답게 묘사된 그림을 만나 반갑다. 순수추상의 창시자 혹은 절대주의 미술의 창안자로 꼽히는 카지미르 말레비치(1878~1935)의 작품 ‘운동선수’(1928~32년 작)는 회화의 색과 결 그 자체가 목적이고자 했던 작가답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장한 운동선수를 색채만으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을 복제하는 대신 창조하고자 했던 말레비치는 이 작품에서도 구상적 재현의 흔적을 모두 제거하면서 단순하고 감각적인 인물의 화사함과 색상의 대비를 통해서 운동선수의 활력을 강조하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관·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