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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야기] 대인동에서
2020년 07월 14일(화) 00:00
[이 정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장]
나 때는 말이야! 영어로 ‘라떼 이즈 홀스!’(Latte is a horse!) 좀 더 진솔하게 표현하자면 ‘나는 꼰대다!’와 동의어다. 오늘은 젊은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필자가 꼰대임을 이실직고하고 나의 청년 시절 추억이 살아 있는 대인동 이야기로 시작한다.

과거 광주의 중심이었던 금남로와 맞닿아 있는 대인동은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자주 들르는 곳이다. 90년대 초반까지 고속버스 터미널이 위치한 광주의 관문이었다.(필자의 기억엔 없지만 1922년부터 1969년까지 광주역도 대인동에 있었다고 한다.) 가난했던 대학 시절, 고향을 다녀오는 길에 대인동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눈꼽만큼 밖에 안 되던 용돈을 탕진했던 곳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의 대인동은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 한 채, 좁은 골목길과 퇴색한 건물이 산재한 전형적인 구도심의 모습이다. 그래서 더욱 아련하다.

옛 추억도 되새길 겸, 얼마 전에도 지인들과 대인동 맛집에서 식사 후, 뼛속까지 남도를 사랑하는 박성수 미래남도연구원장님의 제안에 따라 인근의 금호시민문화관(금호그룹 창업주 고 박인천 회장 생가)을 방문하였다. 고색창연한 고옥과 고즈넉한 정원, 예술 조각품들이 어우러져 삭막한 도심에서 여행객들이 피로를 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또 직업병이 도진다. 박인천 회장의 생가를 둘러보고 있자니 아름다운 고옥의 정취에 심취하는 것도 잠깐,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호남의 대표기업 금호그룹의 흥망성쇠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금호그룹은 현재보다 과거가 더욱 찬란했다는 점에서 금호 본사가 소재했던 대인동과 닮아 있다.

금호는 박인천 회장이 1946년 ‘광주택시’로 창업한 이래 광주고속(현 금호고속)의 성공을 모태로 전기, 전자, 금융, 건설, 항공 등을 아우르는 재계 순위 10위권의 호남권 대표 기업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2006년 대우건설을 6조 4000억 원에, 2008년 대한통운을 4조 1000억 원에 공격적으로 인수하면서 재무 구조가 급격히 악화된다. 무리한 M&A가 낳은 ‘승자의 저주’에 빠진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승승장구에 취해 성공의 뒤편에 도사리고 있던 리스크의 덫을 소홀히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리스크 관리란 기본적으로 더 큰 수익을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옛날이야기 한 김에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가 보자. 위험을 뜻하는 ‘리스크(risk)’의 어원은 암초나 절벽을 뜻하는 그리스어 ‘리자’에서 유래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이야기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귀향하는 도중에 스킬라와 카립디스라는 두 괴물이 살고 있는 절벽을 통과해야 했다. 스킬라는 머리가 여섯 개 달린 괴물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을 잡아먹으며, 카립디스는 소용돌이로 지나가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오디세우스는 두 위험 앞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스킬라’를 선택해 6명의 선원을 희생하고 무사 귀환하게 된다.

이렇듯 리스크 관리는 보다 낮은 위험 또는 적은 수익을 추구함으로써 추후 우려되는 큰 희생을 막자는 것이다. 금호그룹은 공격적인 M&A로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희생을 치르게 된 것이다. 늦게나마 최근 아시아나 항공 매각에 나선 것은 이런 리스크 관리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호남의 자존심 금호가 부디 옛 영광을 회복하길 기도한다.

최근 우리 광주시민들도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였다. 지난 몇 개월간 광주는 코로나19 청정 지역으로 인식됐었다. 시민들은 방심한 나머지 사회적 거리 두기가 느슨해졌다.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오만한 광주시민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대인동 바로 옆에 위치한 금양오피스텔에서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광범위한 지역 감염이 현실화되고 말았다.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 기업 경영에서도, 주식 시장에서도, 감염병 환경에서도 잘나갈 때 조심하라. ‘리스크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