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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방역과 새로운 표준
2020년 06월 16일(화) 00:00
김 항 섭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도, 몇 달 동안 지속된 칩거도, 상황이 마무리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버텼는데, 비록 상황이 진정되더라도 이제 다시는 이전 생활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삶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전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표준이 있었고, 그 표준에 맞추는 것이 국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는데,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보편적인 척도로 자리하던 글로벌 스탠더드는 사실 미국이나 서구의 특수한 이해를 반영한 것이고, 특수성이 보편성을 참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전 세계에 강요되었고, 수많은 나라들이 그 보편성을 의심하기는커녕 흉내 내고 따라잡는 데 골몰했다. 그 표준은 경제 정책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에, 우리 삶의 곳곳에 내면화되었다. 독립국인데도 외국 군대가 버젓이 주둔하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강요 또는 내면화가 훨씬 더 심각했다.

그러나 감염병의 재앙 앞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하릴없이 폐기 수순을 밟는다. 시장도 작동하지 않았고, G2도 코로나 앞에서 무기력하고 무책임했다.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고 자처하던 유럽도 지역 봉쇄를 비롯한 각종 강제 조치로 허둥댔다. 이런 식으로 서구의 특수한 이해를 보편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판을 짜고 기준을 만들어 나머지 나라들에 강요되었던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기존의 모든 잣대들이 무력해진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이 새로운 표준으로 떠올랐다. 방역도 성공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돋보인 것은 그 대응 방식이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지역 봉쇄, 활동 금지 또는 제한 등 강압적인 조치들이 주를 이뤄졌지만,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들의 동의나 협력을 구하는 민주적인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한국형 방역은 G2나 일본 그리고 유럽 국가들의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대응과 대조를 이루면서,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표준으로 부각되었다.

이제 분명한 것은 더 이상 미국이나 서구 또는 일본의 기준에 매일 필요 없이, 우리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G0의 시대이다. 이제 중심은 없다. 대국 중심에서 벗어나, 우리 안의 식민성을 아픔으로 도려내야 한다. 물론 서구든 다른 대국이든, 그 긍정적이고 앞선 측면은 기꺼이 받아들이되, 그들의 특수성을 보편화하고 더 나아가 신화화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대체해도 좋을 듯싶다.

한글 창제 이후 중화사상, 일제의 탄압, 해방 이후의 또 다른 사대주의, 그리고 오늘날 이러한 사대주의를 내면화한 대중매체나 대중문화로 인해 괄시당하고 왜곡당하는 우리의 말과 글에서부터 시작해도 좋다. 쉴 새 없이 서구 학문과 이론만을 퍼 나르는 학자들, 이른바 ‘학문의 보따리상’도 이제 우리의 삶에서 발을 내려 놓았으면 좋겠다. 국사학이나 국문학 교수를 뽑는 데 영어로 강의를 시키거나, 스페인어 교수를 뽑는 데 영어로 인터뷰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아울러 새로운 표준을 이야기할 때, 우리의 특수한 경험 또는 기준을 보편적인 것인 양 내세워서도 안 된다. 우리의 기준에서는 제국을 빼자. 70년대 근대화, 새마을운동의 깃발 아래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나 신념들, 그리고 공동체 문화를 무자비하게 소외시키고 폐기했던 어리석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명, 근대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미명 아래 무시되고 방치되었던, 적어도 조선 후기 실학에서 동학을 거쳐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우리의 학문과 사상을 자부심으로 끌어안을 때이다. “오스카는 로컬이잖아”라고 말했던 봉준호 감독의 그 당당함을 닮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