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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에 오른 뒤 해야 할 일
2020년 06월 09일(화) 00:00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잘 알려진 성어인 등용문(登龍門)은 입신출세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잉어가 황하 상류 계곡의 매우 물살 빠른 폭포를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는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후한서’에 의하면 이응(李膺)에게 인정받는 것을 당시 사람들이 등용문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이응은 모든 기강이 무너져 내리는 후한 말의 혼란 가운데에도 고고한 기풍을 지킨 명사였으니, 그에 힘입어 인지도와 신분이 상승하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인사를 좌지우지했던 것은 아니다. 이응은 환관의 전횡에 맞서 과감한 개혁을 주도하다가 끝내 희생되고 만 인물이다.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당시 권세를 누리던 환관들에게 붙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등용문은 ‘천하의 모범’이라 칭송되던 엄격한 이응에게 인정받는 것 자체를 영광스럽게 여긴 표현이었다.

등용문으로 당대 최고의 이름을 얻은 이는 곽태(郭泰)였다. 곽태가 낙양 땅을 처음 밟았을 때, 그를 만나 본 이응이 “수많은 선비를 만나 보았지만 이렇게 박학다식하고 점잖으며 섬세한 사람은 처음이다”라고 하면서 벗으로 삼자 낙양 전체에 곽태의 명성이 진동했다. 곽태가 낙양을 떠날 때 전송하러 황하 가에 나온 선비들의 수레가 수천 대에 이를 정도였다. 곽태의 두건 한쪽 귀가 비를 맞아 꺾인 것을 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두건의 한쪽 귀를 접어서 쓰면서 일대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추앙되었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렇다면 이응의 인정만으로 곽태의 높은 명망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을까? 용문에 오른 뒤 곽태는 낙양에 안주하지 않고 곳곳을 다니면서 숨은 인재들을 발굴하였다. 백정이나 술장수 등 미천한 직업에 있는 이들까지 포함해서 곽태 덕분에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 60명이나 되었다. 여관에 하루를 묵어도 매번 손수 청소를 깨끗이 해 놓고 떠날 정도로 그는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은거하면서도 인지상정을 저버리지 않았고 정결하면서도 세속과 어울려서, 누구도 그를 부릴 수 없었으며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하였다.

위소(魏昭)라는 인물이 “교과서 가르쳐 주는 경사(經師)를 만나기는 쉬워도 삶의 모범이 되는 인사(人師)를 만나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곽태의 시중들기를 자처하였는데, 그의 진심을 확인한 곽태는 그를 시종이 아니라 벗으로 사귀었다. 곽태의 비문을 쓴 채옹(蔡邕)은 “비문을 쓰다 보면 미화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늘 부끄러웠는데 이 비문을 쓰면서는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다”고 하였다. 용문에 오른 뒤에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시인 이숭인(李崇仁)은 “책 읽으며 옛사람을 생각하니 나의 형편없음을 여실히 깨닫네”(讀書懷古人, 殊覺我無狀)라고 하며 곽태의 드높은 자취를 앙망하는 시를 지었다. 위인지학(爲人之學)에 대한 경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예전에도 입신출세를 위해 공부한 이들이 많았음을 반증한다.

하지만 옛사람을 만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것이 책을 읽는 목적이어야 한다는 당위만큼은 중요하게 여겨 왔다. 칭송만이 아니라 비판도 당연히 필요하다. 이응을 비롯해 뜻을 함께한 100명의 지사들이 몰살당할 때에도 해를 입지 않은 곽태를 두고, 중용의 언행을 실천한 명철보신의 결과라는 칭송도 있었다. 하지만 진정 본받아야 할 처세로 볼 수는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 다만 칭송이든 비판이든 초점은 역사 속 인물을 만나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에 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책을 읽고 지식을 쌓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용문에 오르는 법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작 용문에 오른 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배운 적도 고민한 적도 없는 이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간다면 실로 끔찍한 일이다. 이응과 곽태가 목도해야 했던 한나라 왕실의 몰락 과정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실이지만, 그럴수록 다시 살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용문에 오르기 전에는 물론이고, 용문에 오른 뒤에야말로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