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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빵 등 맛과 믿음 아우른 음식인문학
성스러운 한 끼
박경은 지음
2020년 05월 22일(금) 00:00
중세시대 교회로부터 돈을 주고 버터 섭취권을 사는 행태와 육류 섭취가 금지된 사순절 기간 소시지를 먹은 ‘소시지 사건’이 종교개혁의 불을 당겼다. <서해문집 제공>
“불가에서는 ‘승소’(僧笑)라는 말이 있다. 스님을 미소 짓게 한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슬며시 미소가 나오는 음식이라니, 얼마나 맛있는 것이기에. 바로 국수다. 탐식을 죄악시하는 승가에서도 국수는 과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가장 좋아한 음식도 국수였다. 스님과 오랫동안 교류했던 이들이 스님을 추억하며 떠올리는 것이 법정 스님표 간장국수다.”(본문 중에서)

종교와 음식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기독교(가톨릭·개신교), 불교, 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와 음식을 모티브로 한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책에는 부활절 식탁, 산사의 국수, 아라비아의 디저트, ‘최후의 만찬’ 빵 논쟁 등을 아우른다.

25년째 일간지 기자로 일하며 ‘음식’ 담당 기자를 꿈꿨다는 박경은 기자가 저자다. 박 기자가 종교 담당 기자를 하면서 종교와 음식을 엮은 ‘성스러운 한 끼’가 바로 그 책이다.

저자는 “음식을 먹는 것은 저마다 고유한 존재의 본질과 세계를 만들어가는 행위다. 그 행위의 방식과 특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소통하는 사회의 모든 요소일 것”이라며 “인류와 함께하며 오랫동안 정신문화를 지배해온 종교는 그 요소를 구성하는 기초다”라고 강조한다.

책은 한마디로 맛과 종교의 실크로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음식인문학’이다. 책에는 모두 41개에 달하는 음식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테면 이런 것이다. 버터는 어떻게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나? 눈물로 빚은 음식, 두부에 담긴 사연은? 아라비아는 어떻게 디저트의 천국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버터와 종교개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중세 유럽에서 버터는 인기 있는 식품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가톨릭 지배 하에서는 자유롭게 먹을 수 없었다. 사순절, 금식일에 동물성 지방 섭취를 제한했던 탓이다. 그로 인해 버터 금지령이 생겼는데 버터 섭취권을 매매하는 행태까지 생겼다.

루터는 “금식은 누구에게든 자유롭게 적용되어야 하며 모든 종류의 음식물 역시 자유롭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주창했다. 버터 규제를 성직 매매, 면죄부 판매 등과 같은 개혁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독일의 종교개혁이 버터와 관련돼 있다면, 스위스에서는 소시지가 원인이 됐다. 사순절 기간에 성경 출판업자가 소시지를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육류 섭취가 금지돼 있는데 소시지를 먹은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츠빙글리 사제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사순절 육식 금지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두부 전래는 통일신라 즈음으로 추정된다. 중국과의 불교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다. 고려와 조선에서도 두부는 왕가와 양반가 등에서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특히 조선시대 두부는 사찰에서 만들어졌다. 억불정책 탓에 불교가 위축됐지만 왕실을 수호하고 제사를 담당하는 능침사찰을 두었다.

능침사찰의 주요 임무가 제사 음식인 두부 만들기였다. 조포사(造泡寺)라고 부르기도 한 것은 ‘조포’가 ‘두부를 만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찰에서 두부를 만들다 보니 자연히 스님은 두부를 제조하는 장인이었다. 콩을 구해 두부를 만드는 과정은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전생에 지은 죄가 커서 금생에 두부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저자는 중동 지역의 디저트가 단 이유를 날씨와 식습관에 결부한다. 술을 금기시하는 문화로 차와 음료가 발달했다. 더운 날씨로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설탕을 많이 넣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식욕만큼이나 지적 욕구가 솟구친다. 책의 이면에 깔린 저자의 인식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상대의 식문화에 대한 낯섦이 상대의 세계를 거부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서해문집·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