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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소비 생활도 바꿔 보자
2020년 05월 20일(수) 00:00
옥영석 농협광주공판장장
이십여 년 전 우유와 계란을 모두 취급해 본 한 선배는 가성비로 볼 때 계란은 비싼 것이, 우유는 싼 상품도 무난하다는 경험칙을 귀띔해 주었다. 십여 년 넘게 상품을 다뤄 본 선배님 말씀이니 아내에게 장 볼 때 잊지 말라고 몇 번이나 일렀어도 유정란 맛보기가 어려운 걸 보면, 주부 입장에서 두 배나 넘는 상품을 선택하기가 보통 뱃심으론 안되는 모양이다.

특란, 왕란, 초란, 유정란 등 종류가 많기도 하고 크기도 다양한 계란은 가장 쉽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완전식품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꿔놓으면서 집밥족이 늘어감에 따라 간편하고 쉽게 요리할 수 있는 계란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열 개들이 유정란 한 팩이 1만 6000원에 진열되는 것도 있다는데 배짱 좋게 집어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강남의 유명 백화점 식품관 가격이니, 부자들이야 가격 따지지 않고 사겠거니 싶지만 계란 한 판 가격이 삼겹살 서너 근 값이라면 ‘애그플레이션’이란 조어가 생길만도 하다.

그렇다고 삼겹살이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집에서 쉽게 구울 수 있는 삼겹살과 목살은 지난해에 비해 10% 넘게 오른 반면 돼지갈비는 삼겹살의 반값으로 떨어지고 있다. 돼지갈비가 집밥 메뉴로서는 불리한 까닭이다.

학교 급식이 중단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은 친환경 농산물 생산농가와 낙농업계 종사자들이다. 상추와 딸기, 토마토 등 친환경 농산물의 급식 통로가 막히자 일반 농산물보다 낮은 가격에도 팔지 못해 폐기하는가 하면, 재고가 쌓여가는 우유업계는 주말마다 할인 행사에 나서고 있지만 소비 진작에는 역부족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지난 4월 소비자 물가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비자 물가는 세계 주요국들에 비해 변동 폭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들이 강도 높은 봉쇄 조치를 취해 사재기 열풍이 불면서 생필품과 식료품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지만 국내에서는 사재기가 일어나거나 공급망이 흔들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3%로 1999년 7월 이후 최저치다.

이는 꼭 소비해야만 하는 식료품과 석유류 이외에는 소비가 미미하다는 뜻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둔화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긴급 재난 지원금이 풀리고 그동안 미뤄오던 개학이 이루어지면 동네 마트와 전통시장의 매출이 늘고, 이들에게 공급하는 중간 도매상과 생산자들에게도 활기가 이어질 수 있겠지만, V자형 경기 반등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불과 몇 달 동안 우리는 그동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겪어왔고 믿기지 않는 현실을 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되자, 각국은 국경을 폐쇄하고 의료용품의 수출을 규제했고 대의를 내세우던 국제기구들은 무기력하게 강대국들 눈치만 보고 있다. 결국 위기 앞에서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라는 바둑 격언처럼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외환 위기와 미국발 금융 위기를 국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극복해온 경험이 있다. 형편이 어려워질수록 먹고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인간사이니 조금만 달리 생각해도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 유정란이 오르면 특란을 사면 되고, 값이 싸진 우유가 물리면 평소 손이 가지 않던 치즈도 먹어 볼 일이다. 삼겹살이 오르면 불포화지방산이 높은 오리고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닭갈비도 있다.

본디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수요는 시절 따라 변해가기 마련이니, 오늘 비싸다고 값진 게 아니고, 싸다고 맛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옥영석

농협광주공판장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