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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소설처럼’] 떠난 이들이 어떻게든 애쓰는 노래 -김유담, ‘탬버린’
2020년 04월 23일(목) 00:00
이번 선거도 수도권에서 승부가 갈렸다고 한다. 많은 의석이 서울·인천·경기도에 몰려 있으니 산술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의 지역구 승부처 대부분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를 토대로 180석의 거대 여당이 되었다. 지금의 여당이 기록적인 참패를 기록한 18대 총선의 대한민국 지도는 호남이 고립된 모양새였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보다 중립적으로 효과적으로 선거 결과를 살피기 위한 픽토그램(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같은 의미로 통할 수 있는 그림으로 된 언어체계)이 제시되었는데, 지역구의 면적과 상관없이 지도를 의석으로 배분한 것이다. 벌집을 연상시키는 이 픽토그램은, 선거 결과와는 별개로 과밀화·거대화된 수도권의 위용을 극적으로 상기시킨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정치는 물론이고 무엇이든지 우리나라는 수도권에서 통하면 된다. 정치·경제·사회·예술……, 그 어떤 것이라도 말이다. 대부분 거기에 있으니까, 이 또한 산술적으로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균형 발전을 위한 여러 정책과 수도권 규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의 본질이 바뀌기는 어렵다. 지방의 인재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지방의 인력은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으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2기 신도시의 입주민이 되어 총선 결과를 보며 목포에 사는 어머니와 간단히 안부 전화를 주고받는 수도권 시민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해에 올라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치사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듯이 지방 청년의 수도권 상경기도 거세거나 잔잔한 파도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불광동 반지하방이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만 신인 작가 김유담의 첫 소설집 ‘탬버린’을 읽고 나니, 이토록 복잡하고 다난한 수도권에 제 발로 편입해 스며들기 위해 발버둥쳤을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산업화 시절부터 이어진 ‘서울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만큼 지방은 왜소해진다. 전라남도 00군이 장래에 곧 사라진다는 예측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게 된 것이다.

‘탬버린’은 이토록 왜소한 지방 도시를 가까스로 떠났거나, 떠나길 바라거나, 도리어 그곳에 부득불 다시 돌아간 청년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여성의 이야기다. 작가의 등단작인 ‘핀 캐리’는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대신에 가장 노릇을 하던 오빠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오빠는 지역 주류회사의 막걸리를 운송하는 일을 했고, 새벽 운행 중 사고로 숨진다. ‘나’는 오빠가 남긴 수첩에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던 그가 내기 볼링에 집착이라 할 정도로 몰입해 있었음을 발견한다.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볼링 핀의 이미지는 읽는 이를 아이러니에 빠지게 한다. 시원하게 쓰러지는 핀은 경쾌하고, 스페어를 처리하는 기술은 섬세하다. 하지만 오빠의 삶은 경쾌하지도 섬세하지도 못하고, 그 삶의 끝을 받아 안은 나의 삶 또한 그렇게 표류할 참이다. 나는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는 인식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라인에 선다. 그녀의 볼링은, 아니 그녀의 삶은, 핀을 쓰러트릴 수 있을 만큼 정확하고 빠를까? 김유담 작가는 섣부른 답변을 보류한 채, 뒤이은 작품들로 볼링공의 회전과 세기를 그린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던 대학 생활을 잠시 접고 고향에 돌아와 그곳의 남자와 잠시 연애하는 나, 저렴한 치과를 검색해 찾은 낯선 병원에서 우연히 유년 시절의 친한 동생을 마주친 나, 강압적인 분위기의 회식에서 어쩔 수 없이 탬버린을 흔들며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를 떠올리는 나……. 소설 속 ‘나’는 2020년의 청년이며 그들은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를 하거나, 임대주택에서 자라나 홀로 삶을 건사하거나, 불능인 가족과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지키려 애쓴다. 그 인물들 중에 밀양이나 함평 같은 곳에서 기어코 서울로 떠나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정이 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마포에 홀로 사는 동생이 떠올라서였을까, 마포의 동생을 늘 걱정하는 목포의 어머니가 떠올라서였을까. 모르겠다, 모르겠고……. 다만 내 손가락에도 묵직한 볼링공이 걸려 있는 듯해, 괜히 손목을 만지작거려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