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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생각’]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무가 있다
2020년 04월 16일(목) 00:00
우리네 시골 마을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가 감나무다. 마을마다 차이야 있겠지만, 사람의 마을 어디라도 대개는 집집마다 뒤란에 감나무 한 그루씩 심어 키웠다. 감나무를 키우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열매인 감을 따 먹기 위해서가 가장 큰 목적이겠지만, 그 밖의 이유도 적지 않다. 감나무는 뱀이 무척 싫어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뒤란 장독대에 드나들어야 하는 아녀자들에게 뱀은 혐오와 질겁의 대상이다. 그래서 감나무 한 그루를 뒤란의 장독대 곁에 심었다. 감나무 때문에 뱀이 오지 않는다고 믿은 아녀자들은 그렇게 해서 장독대를 편안하게 들락일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감나무를 키우던 사람들이 집을 떠나면 그 감나무에서 맺는 열매는 먹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감이 열리기야 하지만 단맛이 들지 않고, 떫은맛만 심해진다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예로부터 사람들은 감나무를 사람의 발걸음 소리 들으며 열매 맺는 나무라고 이야기해 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나무라는 얘기다.

경남 의령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무려 450년 넘게 살아온 이 감나무는 높이가 20m나 되고, 가슴 높이 줄기 둘레는 4m 가까이 된다. 2008년에 우리나라 감나무 중 유일하게 천연기념물 제492호로 지정됐다.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자 여느 천연기념물 나무들처럼 주변에 울타리가 쳐지고, 사람들은 나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됐다. 때마다 거름을 주고, 병충해 방지를 위해 세심하게 배려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쇠잔해 갔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여느 감나무에 비해 규모가 떨어지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쇠잔해지는 나무의 상태가 아쉽기만 하다.

긴 세월을 살아온 나무가 수명을 다해 노쇠 현상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감나무는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나무인데, 울타리를 쳐 놓고 사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니,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다. 자연 안에서 사람이 더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건강한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평화로운 공존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밀착해야 할 때도 있고, 거리 두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지나치게 가까워져서도, 멀어져서도 안 된다. 미묘한 조화가 필요하다. 그 자리를 찾아내는 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미생물과의 싸움으로 온 나라가 정지 상태인 이즈음에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사람살이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감나무의 감을 따 먹는 것처럼 자연이 베푸는 혜택을 대가 없이 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자리를 찾아내기보다는 자연을 몰아내는 쪽으로만 일관해 왔다.

미세한 티끌도 허용하지 않았고, 이름 모를 생명체와의 공존은 극도로 혐오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먼지 한 톨까지 빨아들이는 청소기를 만들었고, 음용수에는 미세한 침전물도 허용하지 않았다. 미생물이 숨 쉬며 살아가야 할 땅은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는 단단한 콘크리트로 덮었다. 보도블록 틈에서 솟아오른 미미한 풀꽃들은 여지없이 짓밟히거나 뽑혀야 했다.

온갖 항생제를 만들어 미생물을 살해하기도 했다. 사람의 마을에서 모든 자연을 철저히 몰아낸 것이다. 한 치의 틈도 자연에 허용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미생물들은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어서라도 애면글면 살아남았다. 생명 가진 것들의 본능이다. 급기야 사람들은 미생물을 퇴치할 또 다른 퇴치제를 찾아내는 데에 골몰해야 했다. 자연과의 교호 과정을 차단하는 데에는 갈수록 더 많은 시간이 들었고, 그 사이에 변형된 미생물들은 숙주인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갔다. 살아남기 위해 미생물이 선택한 생존 전략일 것이다.

사람도, 나무도, 미생물도 모두 자연의 일부로,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와의 평화로운 공존이 절실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자연이 있어야 한다. 그게 지금 우리가 찾아내야 할 거리 두기의 진실이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