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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봄 나무, 잿빛 일상 속 기적처럼 만개한 목련꽃
2020년 04월 02일(목) 00:00
김원숙 작 ‘봄 나무’
“작은 마당 하나 가질 수 있다면/키 작은 목련 한 그루 심고 싶네/그리운 사월 목련이 등불 켜는 밤이 오면/그 등불 아래서 그 시인의 시 읽고 싶네…” <정일근 작 ‘깨끗한 슬픔’ 중에서>

한국전쟁을 겪으며 힘겨운 피난생활을 하던 박완서 작가(1931~2011)는 자전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장독대 앞에 서있는 목련의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고 “얘가 미쳤나봐”하는 경악의 소리를 내뱉는다. 작가 자신이 나무가 되어 긴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후 인간이 저지른 전쟁이라는 ‘미친’ 짓을 목격하고 내지른 비명이었던 것이다. 처참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극단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름끼치는 전율이었을까.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세상이 모두 잿빛으로 멈춰 선 듯 하는데도 계절은 속절없이 찾아와 꽃망울을 터뜨리고 새잎이 돋아나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덕분에 온 세상이 꽃대궐 이지만 마냥 설레기에는 어쩐지 주춤거려진다. 적극적으로 봄 마중 하지도 못하고 오는 봄 반갑게 맞이하기도 어색한 시절이 되었다. 피폐해진 일상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때 되면 오고 가는 자연의 섭리가 다만 무심할 뿐이다.

김원숙작가(1953~ )의 ‘봄 나무’(2008년 작)는 화가가 눈이 내려앉은 마른 가지들을 부둥켜안고 있는데 그 차가운 눈이 모두 하얀 꽃들로 변해서 세상이 환해지는 기적을 그린 그림이다. “눈이 녹아 마른 가지를 적시고 그 속에 잠자던 흰 꽃들을 깨웠다”는 작가의 말처럼 목련꽃을 비롯한 봄꽃들은 어디에 숨었다가 기습적으로 나타난 기적처럼 어두운 우리 마음을 눈부시게 하는지 모르겠다.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목련꽃들을 바라본다. 죽은 듯 시커먼 나무 등걸 속 어느 자리에 등불 같은 꽃봉오리가 머물러 있었을까. 만개한 꽃들 사이로는 도무지 시리고 추운 엄동의 계절은 보이지 않는다. 힘겨운 시련을 이겨낸 봄의 웅장함이 위대해 보이는 까닭이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관·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