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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2020년 04월 01일(수) 00:00
[이 호 준 시인]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은 대인 관계에서 ‘너무 가깝게도 멀게도 말라’는 뜻이다. 그 어원은 중국 춘추 전국 시대 때 일화에서 인용된 것인데 당시 월나라 왕은 문종(文種)과 범려(范려)라는 인재를 얻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월나라가 강성해졌을 때 범려는 문종에게 이런 말을 했다.

“월왕 구천(句踐)은 목이 길고 입이 튀어 나와 매의 눈초리에 이리의 걸음을 하는 상이오. 이 같은 상을 한 사람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해야 하오. 만일 그대가 왕을 떠나지 않으면 왕은 장차 그대를 죽이고 말 것이오. 그러니 어서 이 왕궁을 떠나 그대의 살길을 도모하시오.” 그러나 문종은 범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범려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문종을 버려두고 혼자서만 월왕을 떠났다. 그 후 결국 문종은 왕에게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했다.

범려가 살아남은 것은 월왕과의 관계에 불가근불가원을 잘 적용했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실망을 주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우리 삶에 흔히 있는 일이다. 풍경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감동의 마음을 품었던 일 또한 가까이서 보면 멀리서 볼 때와 다른 경우가 많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상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게 사람과의 관계였다. 지금도 예상치 못한 황당한 일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사찰은 산문을 닫아 명상에 들어가고, 교황청에서도 성당 문을 닫고 영상으로 미사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일부 종교는 예배를 꼭 드려야 한다고 고집하며 주말이면 수백 명씩 모인다. 광주 구시청 거리와 상무지구 등 몇몇 지역에 젊은이들이 유흥가에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시민들의 마음은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취재하는 기자의 물음에 한 젊은이는 “우리 같은 젊은 사람은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는대요”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내 주위에도 마스크가 갑갑하다고 착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공동체 생활에서 나만 내세우는 생각은 공공의 적이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보다 남을 배려하는 이타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기 자신과 우리가 속해 사는 사회, 국가를 위해서.

지금은 사회적 거리가 꼭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동물과 동물 사이에도 적당한 사회적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산 속의 나무들도 살아남기 위하여 서로를 배려하며 적당한 거리로 자란다고 한다. 세상에 모든 사물에는 생존을 위한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박쥐, 사향고양이, 낙타 등에서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숙주를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옮긴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예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아왔던 동물들의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동물과 인간의 거리가 급격하게 가까워졌을 것이고 그 결과 사람에게 감염된 것이다.

사람과 야생 동물의 사이에도 사회적 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자연의 질서를 깬 것이 사람이다. 그동안 마구잡이식 개발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생태계가 파괴되었던가.

서예(書藝)에서도 획과 획의 여백 즉 간격이 중요하다. 문인화와 한국화의 여백도 적당해야 격 높은 작품이 된다. 여백이 바로 적당한 거리인 것이다.

제주도의 돌담은 허술해 보여도 거센 태풍에도 잘 무너지지 않는다. 돌과 돌 사이에 난 틈이 바람 길을 내주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처럼 통행금지령을 내리지 않아 생활에 불편함이 없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배려하는 우리 정부의 조치가 불가근불가원을 잘 적용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비상 국면에서도 사재기를 안 하는 우리 국민들의 수준 높은 정서가 아름답고 자랑스럽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는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고, 불가근(不可近) 즉 사회적 거리를 꼭 지켜야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