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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소설처럼’] 벙커에서의 질문
- 강영숙 ‘부림지구 벙커X’
2020년 03월 26일(목) 00:00
2020년의 봄은 여러 사람의 기억에서 확연한 장면으로 남을 것 같다. 마스크, 방역복, 격리, 전염병…. 확진자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감염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유지는 경제의 위축을 필연적으로 불러오고 그 피해는 취약 계층에 더욱 치명적일 것이다. 펜데믹 선언 이후 코로나19는 어느 도시, 어느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사망자가 폭증하는 등 의료 붕괴의 조짐이 보인다. 바이러스가 시작된 중국은 그 통계를 완벽하게 믿기 어렵고,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은 상식과는 동떨어진 방역 대책을 밀어붙이는 듯하다.

적지 않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이들의 일상이 망가진 세계적 재난 상황. 진단도 예상도 어려운 시국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개인에게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제껏 인류가 일군 과학 문명과 산업화가 무색하게도, 손 씻기와 거리 유지가 개인에게 부여된 몫의 전부다. 피부색이나 언어·성별도 가리지 않는 바이러스의 습격은 인간을 고독한 개인으로 만들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최대한 넓고 꼼꼼하게 펼쳐져 있는 것으로 보였던 자본주의 연결망의 취약함도 이참에 드러났다. 우리는 이 난국을 결국 극복할 것이니 필요 이상으로 절망하고 비관할 필요는 없겠으나, 재난 앞에 선 개인의 존재는 오래 곱씹어 생각할 만하다. 재난에서 인간은 어떤 인간이어야 하는가. 나는 어떤 나로 존재해야 하는가.

강영숙 장편소설 ‘부림지구 벙커X’는 이 시국에 소설의 형식을 취한 시의적절한 질문이 된다. 중화학 공업지대였던 부림지구는 대지진 ‘더 원’의 여파로 오염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확신하는 정부는 부림지구를 고립시키고, 그곳에 남은 주민을 오염원 취급한다. 벙커에 남은 사람들은 지진 전의 일상으로 복귀는커녕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배변에도 제약을 받는 등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어려운 삶을 감내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스스로를 감염원으로 인정하고 정부의 제안대로 몸속에 칩을 넣고 부림지구를 떠나거나, 지금 이대로 혹은 더 악화된 환경을 견디며 부림지구에 남는 것이다.

지진 이후 디스토피아를 그린 서사는 부림지구를 둘러싼 재난의 비극과 특정한 세력의 음모, 악무한을 돌파하는 인간의 의지 같은 것을 풀어내기 쉽지만 ‘부림지구 벙커X’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정맥류 스타킹에 집착하는 주인공 ‘나’와 벙커에 남은 사람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대장’, 배우를 꿈꾸는 청소년 ‘혜나’, 둘도 없는 로맨티시스트로 보이는 노인 부부, 격한 사랑을 나누는 퀴어 커플, 재해민 설문을 이어 가는 연구원 등등…….

소설은 그들을 한데 묶어 서사의 동력으로 쓰기보다는 그들 각자의 사연에 관심을 기울이며, 진술을 멈칫거리는 방식으로 서사의 속도를 조절한다. 인간적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인간성을 찾아, 지진이 일어난 날 앞뒤의 기억을 조직해 소설에 흩뿌린다. 그런 의미로 디스토피아 소설 치고는 너무나 나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주인공 ‘나’의 캐릭터에 설득력이 생긴다. 우리 모두는 거의 그러할 테니까. 그것이 사람이고, 개인이니까.

벙커에 별의별 사람이 다 모여 있듯, 지금 여기의 개인도 당연히 그렇다. 누구는 아무도 모르게 마스크를 기부하는데 누구는 마스크를 사재기했다가 비싼 값에 팔아 수익을 남긴다. 누구는 진료소와 갖가지 현장에 투신하는데 누구는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혐오를 전시한다. 소설처럼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코로나19가 남기는 상처도 이에 못지않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대처가 세계의 이목을 끄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의무를 수행하는 민주주의 힘 덕분일 것이다. 타인에 대한 봉쇄와 혐오는 민주주의에 대한 역행이다. 치밀한 민주주의하에서만 우리는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 손을 씻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과 연대할 수 있다.

주인공을 포함한 소수의 사람은 부림지구에서의 대안적 삶을 모색한다. 폐허로 자진해 돌아가는 그들의 선택이 정당해 보이는 것은 부림지구 너머의 개인이 더 이상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삶의 새로운 수행을 요구하고 있다. ‘나’ 이곳의 체제(벙커)에서 어떤 개인(X)이 될 것인지. 어쩌면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한 결정적 질문이 될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