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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광주, 나는 부천
2020년 03월 18일(수) 00:00
박 진 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지난해 여름, 융복합 문화시설인 ‘부천 아트벙커 B39’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명불허전이었다. ‘2018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이라는 이력이 그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 소각장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화사한 부활’이었다.

이날 특히 시선을 끌었던 건 건물 외벽에 새겨진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라는 동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부천은 문학과는 거리가 먼(?) 도시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무대이긴 하나 ‘문학 창의도시’라는 간판을 달기에는 문학적 토대가 그다지 단단하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라는 명칭은 문학·음악·공예·디자인·영화·미디어아트·음식 등 7개 분야에서 뛰어난 창의성을 동력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도시에 부여된다. 현재 80개국 246개 도시가 가입된 유네스코 창의도시 협력체(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UCCN)에는 광주(미디어아트)를 비롯해 서울(디자인), 부천(문학), 부산(영화) 등 국내 10개 도시가 소속돼 있다. 유네스코 창의도시가 되면 해당 분야의 도시 간 교류는 물론 UCCN의 네트워킹을 매개로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국제 무대에서 통하는 ‘유네스코’라는 로고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부가가치가 높은 자산이다. ‘유럽문화수도’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적인 문화도시가 된 영국 리버풀처럼 창의도시로 지정되면 문화도시는 물론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 부천이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눈독을 들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네스코’라는 로고



사실 부천은 1997년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가 탄생하기 전에는 공업도시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이를 벗어나기 위해 고심 끝에 펄벅 여사관련 ‘문화적 카드’를 추켜들었다. 노벨문학 수상자로 유명한 펄벅 여사가 6·25 전쟁 당시 부천 심곡본동에서 혼혈 아동을 보살핀 ‘인연’에 착안해 ‘펄벅기념관’을 건립하고 이와 관련 스토리텔링에도 공을 들인 것. 여기에 ‘논개’의 변영로 시인, 부천에 잠시 적을 두었던 정지용 시인의 역사적 단편들을 실로 엮어 유네스코의 문을 두드렸고, 2017년 문학 창의도시에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

부천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문학도시로서의 담대한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시 산하에 ‘문학창의도시 부천’을 주도적으로 이끌 전담 사무국을 신설했다. 또한 거의 모든 문화시설에 유네스코 로고를 내걸었는가 하면 전용 홈페이지를 오픈해 UCCN과의 교류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실제로 UCCN의 홈페이지에서 부천을 클릭하면 사무국 이외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부천시청이 링크돼 있어 부천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말하자면 부천을 전 세계에 알리는 홍보 플랫폼으로 톡톡히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오는 2021년 개최되는 UCCN총회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는 광주가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지정된 지 6주년이 되는 해다. 광주시는 국내 유일의 미디어아트 도시라는 영예를 거머쥔 이후 광주문화재단 미디어사업단을 주축으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핵심 시설인 에이엠티(AMT:Art and Media Technology)착공, 홀로그램 극장 오픈, 유네스코 창의벨트 추진 등 인프라 조성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지난해 6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연례회의에 전 광주시 문화체육실장과 미디어사업단장 등 4명이 참석했으며 여기에서 ‘부의장 도시’로 선정되면서 미디어아트 도시로 한 단계 더 발돋움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광주의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에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 ‘예술’에만 치우쳐 ‘산업’과의 연계성이 떨어지고 창의도시의 성패가 달린 인재 양성과 지역 문화기관들의 협업도 미흡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네스코’와의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가령 UCCN 홈페이지에선 담당자 이메일 주소 외에 광주와 관련된 그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다. 무늬만 창의도시인 광주의 현주소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쉬운 것은 전문성과 권한을 갖춘 전담 조직의 부재다. 다른 창의도시들이 독립적인 기구나 팀을 구성해 주요 사업이나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과 달리 광주시는 광주문화재단에 사업을 위탁하고 있는 이원화 체제다. 미디어아트 관련 업무의 경우 광주시 문화도시정책관 주무관 1명이 맡고 있는데 1~2년마다 담당자가 바뀌면서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단행된 시 정기 인사에서 시청 공무원 2명과 미디어사업단장이 이탈리아 유네스코 연례회의 출장을 다녀온 지 6개월밖에 안 됐는데도 타 부서로 이동한 것이 그 좋은 예다.



무늬만 ‘창의도시’?



잘 알다시피 광주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동아시아 문화도시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지녀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래서일까. 글로벌 기구인 UCCN의 가치를 간과한 채 도식적으로 관련 사업들을 진행하는 탓에 창의도시다운 면모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제 아무리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일 터. 이제부터라도 유네스코 창의도시의 효과를 겨냥한 비전과 로드맵을 촘촘히 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첫 단추는 창의도시를 ‘기획’하고 광주를 브랜딩하는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