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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오월 광주와 주먹밥
2020년 03월 12일(목) 00:00
5·18 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는 올해 40주년을 맞는 5·18 기념행사의 엠블럼을 ‘오월 주먹밥’으로 결정했다. 엠블럼은 원형 이미지로 1980년 5월 항쟁 당시 광주 공동체가 실천했던 나눔의 가치를 상징하는 ‘주먹밥’과 5·18의 세계화를 의미하는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했다. 더불어 광주시는 지난해 주먹밥을 대표 음식으로 선정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광주 주먹밥의 브랜드화와 상품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당시 중앙 언론은 폭도들의 약탈과 방화와 파괴가 넘치는 무법천지 난장판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광주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진압군의 발포와 무자비한 폭력으로 도시는 헤아릴 수 없는 분노와 슬픔에 잠겼지만, 시민들은 서로를 독려하며 질서를 유지했다.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의 상인들은 거리에 솥단지를 걸어 놓고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나눠 주었다. 그때 그 주먹밥은 40년이 흘러 광주를 상징하는 음식이 되었다.

주먹밥은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그중에서도 동북아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이다. 쌀의 종류는 크게 인디카와 자포니카로 나뉜다. 한국과 일본에서 먹는 쌀은 모양이 둥글고 길이가 짧은 자포니카다. 이에 반해 인디카는 모양이 가늘고 길이가 긴 쌀로 흔히 ‘안남미’라 부른다. 두 품종은 모양뿐만 아니라 찰기에서 차이가 난다. 쌀의 전분에는 아밀로스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 비율이 낮을수록 찰기가 강하다. 인디카는 아밀로스가 25퍼센트 이상인 데 반해 자포니카는 20퍼센트 이하다. 때문에 자포니카는 잘 뭉쳐지는 반면 인디카는 푸석거리고 잘 뭉쳐지지 않는다. 자포니카의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반영된 사례가 바로 주먹밥 문화다.

주먹밥은 요리라기보다는 쌀을 섭취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가 원조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주먹밥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능적인 공통점이 발견된다. 전쟁 시에는 전투식량으로, 재난 시에는 구호식량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일본의 경우 전국시대 무사들의 비상식량에서 출발해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생활 터전을 잃은 이재민의 끼니가 되었다. 한국은 임진왜란 등의 전란과 한국전쟁 당시 전투식량으로 보급되었다. 5·18 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에게 제공되었던 주먹밥 역시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이처럼 주먹밥은 밥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음식을 나눔으로써 공동체의 결속력을 ‘단단하게’ 다지는 음식이다. 주먹밥은 태생 자체가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음식이었다.

주먹밥의 이러한 속성은 만드는 과정에도 배어 있다. 주먹밥도 그렇지만 ‘스시’라 불리는 일본식 생선초밥도 사람의 손으로 밥을 쥐어서 만든다. 그런데 밥을 쥔다는 행위는 같지만 둘은 전혀 다른 결과를 지향한다. 스시에서 밥을 쥘 때는 밥이 잘 풀어지도록 뭉친다. 밥알과 밥알 사이에는 적당한 공간이 있으며 서로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잘 만들어진 스시는 입안에 들어가 침과 섞이는 순간 자연스럽게 흩어져야 한다. 그래야 밥 위에 올린 생선회와 조화롭게 어울린다. 이에 반해 주먹밥은 밥이 잘 풀어지지 않도록 뭉친다. 밥알은 서로 적극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형태가 허물어지거나 손에 밥알이 덕지덕지 묻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주먹밥을 만들 때는 양 손을 오목하게 해서 지루할 정도로 밥을 치대야 한다. 밥알 사이의 공기를 빼 내기 위해서다. 그럴수록 주먹밥은 맛있어지고 촉촉함은 오래 유지된다. 때문에 주먹밥은 오래오래 꼭꼭 씹어야 맛있고 오래오래 꼭꼭 씹는 행위를 통해 시련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강해진다.

주먹밥에서 파생된 삼각김밥 역시 이러한 속성을 이어받았다. 우리나라 편의점에 삼각김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이다. 당시 삼각김밥 하나의 가격은 900원.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1000원이던 시절이니 결코 싼 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포장 기술의 개선과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삼각김밥은 갈수록 저렴해졌다. 외환 위기의 시련 속에서도, 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도, 삼각김밥은 서민들의 든든한 끼니가 되어주었다. 조만간 광주에 있는 편의점에서 ‘5·18 삼각김밥’ 혹은 ‘광주 삼각김밥’을 만날 날을 기대해 본다.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면 상처가 되지만 극복하면 오히려 희망이 된다. 주먹밥을 통해 광주정신을 계승하려는 의지는 그런 점에서 희망적이다. 광주 시민의 음식 솜씨와 미의식은 주먹밥 하나에도 얼마든지 광주정신과 함께 게미진 맛을 녹여낼 것이라 믿는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