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고규홍의 ‘나무 생각’] 모든 생명과 끊임없는 교감으로 살아가는 나무
2020년 02월 20일(목) 00:00
고로쇠나무의 수액 채취 작업이 한창이다. 예년에 비해 열흘 정도 앞당겨졌다. 고로쇠나무뿐 아니라 대개의 나무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에서 물을 끌어올린다. 고로쇠나무는 이 즈음에 끌어올리는 물의 양이 많아 줄기 껍질의 갈라진 틈 사이로 물을 흘리곤 한다. 굳이 상처를 내지 않아도 저절로 수액이 흐르는 경우가 많다.

고로쇠나무를 비롯한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 이를테면 단풍나무와 복자기나무·신나무·시닥나무 등은 모두 물을 많이 끌어올린다. 자연히 불에 견디는 힘이 강해 방화수(放火樹)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장 요긴한 건 사람의 건강을 위해 활용하는 단풍나무 종류의 수액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경우도 그렇다. 원주민들은 이른 봄에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많이 자라는 설탕단풍나무에서 수액을 뽑아내는 축제를 열고, 이때 뽑아낸 수액을 한 해 동안 만병통치약처럼 쓰곤 했다. 지금 널리 쓰이는 메이플시럽(단풍나무 시럽)이 그것이다.

북아메리카와 비슷하게 우리 땅에서 잘 자라는 고로쇠나무의 수액도 사람에게 매우 이로운 나무로 알려졌다. 고로쇠나무라는 이름 또한 뼈에 이로운 나무라는 뜻에서 골리수(骨利樹)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로쇠나무 수액을 사람들이 탐하게 된 건,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여러 전설에 근거한다. 그 가운데 신라 말기에 활동한 도선국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도선국사가 오랜 좌선 끝에 깨우침을 얻어 일어서려는데, 결가부좌한 무릎에 힘이 빠져 일어설 수 없었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려고 곁에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았는데, 나뭇가지가 부러져 쓰러지고 말았다. 망연자실 허공을 바라보는 도선의 얼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부러진 나뭇가지 끝에 맺혔다 떨어지는 물방울이었다. 도선은 아무 생각없이 입으로 흘러드는 물방울을 들이마셨는데, 신기하게도 무릎에 힘이 생기면서 일어설 수 있었다. 그 나무가 고로쇠나무였고, 그때부터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힘을 잃은 뼈도 소생시킨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고로쇠나무 수액에는 포도당·자당·과당 그리고 칼슘과 마그네슘을 비롯한 몇 가지 미네랄이 포함돼 있다. 단맛이 나는 포도당 등은 웬만한 나무의 수액에서는 어김없이 추출되는 성분이다. 칼슘과 마그네슘은 포함돼 있긴 하지만 그리 많은 양은 아니다. 그 정도는 평소에 먹는 과일에서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양이다. 고로쇠나무 수액의 97% 정도는 그냥 물이다. 전설에서처럼 뼈에 이로울 만큼의 칼슘을 섭취하려면 엄청난 양의 수액을 마셔야 한다. 그러나 과도한 수분 섭취는 외려 당뇨나 심장병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른 봄에 땅 깊은 곳에서 나무줄기로 오르는 싱그러운 물이 건강에 나쁠 건 없다. 땅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 오는 ‘대지의 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요긴하다. 그러니 뼈를 이롭게 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고로쇠나무는 워낙 물이 많은 나무여서, 일정 양의 수액을 덜어낸다 해도 생장에 큰 문제는 없지만, 지나치게 많은 수액을 빼앗기면 생육 상태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나무의 수액은 물과 햇살과 공기만으로 살아가는 나무에게 가장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다. 사람으로 치면 피와 다를 바 없다. 나무의 수액을 채취하는 건 결국 나무의 피를 빨아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로쇠나무는 결국 자신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사람들에게 내어 주며, 사람의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셈이다. 나무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준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 역시 나무와의 이같은 교호(交好) 작용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서려면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바깥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차단해야만 하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아무리 틀어막아도 한순간이나마 외부와의 교호 과정을 도외시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세상의 험한 차단벽 아래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른 생명체에게 나눠 주는 나무의 삶을 바라보면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때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