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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지음· 윤미연 옮김
2020년 02월 14일(금) 00:00
‘책’이라면 한 페이지 넘기기도 어려운 18세 소년과 평생 책과 문학을 사랑해온 노인이 ‘책’과 ‘낭독’을 통해 우정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책이 출간됐다.

전 세계 서점과 도서관 등을 순회하며 낭독회를 열고 있는 직업적인 낭독가 마르크 로제의 첫번째 장편 소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는 작가가 자신의 특기를 살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저자는 27년간 세계 곳곳에서 책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고 유대를 맺으며 뛰어난 이야기 전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책은 혼자 읽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읽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책 읽어주는 일’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책읽기를 통한 ‘접촉’과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작품의 배경은 프랑스 수레국화 노인요양원. 주인공 그레구아르는 80%가 합격하는 대학입학자격시험에도 떨어진 후 수레국화 요양원 주방보조로 취직한다. 어느날 음식을 배달하러 ‘28호실’에 들어선 그는 모두가 ‘책방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파키에씨를 만나게 된다. 지금은 햄버거 가게로 바뀌어버린 문학서점을 운영했던 그는 파킨슨병이 악화되자 가게를 정리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책 3000권과 함께 요양원에 들어왔다.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에 매일 드나들던 그레구아르는 조금씩 책과 친숙해지고, 파키에 할아버지는 그에게 책 읽는 즐거움과 그 즐거움을 타인과 나누는 방법을 알려준다. 바로 ‘낭독’이다.

녹내장이 악화돼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게 된 파키에 할아버지를 위해 책을 읽어주는 그레구아르의 낭독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옆방으로, 요양원 전체로 번져 나간다. 생의 마감 시간만을 기다리던 노인들은 일상의 기쁨을 되찾으며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직원들, 방문자들 모두가 행복해한다. ‘책과 인생’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물려주고 싶어했던 파키에 할아버지의 마음이 그레구아르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그 마음이 요양원 전체로 퍼져나간 것이다.

소설에서는 또 주인공들 뿐 아니라 요양원에 입주한 노인들의 사연들도 눈길을 끌며 그레구아르가 입주자의 임종 직전까지 함께 하며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나 파키에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책 속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도보 여행을 떠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책’을 소재로 한 소설인 만큼, 학창시절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그레구아르에게 파키에 할아버지가 권한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비롯해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 ‘비곗덩어리’,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잭 런던, 파블로 네루다, 잭 케루악, 장 주네,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문학동네·1만38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