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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상정과 정도껏
2020년 01월 15일(수) 00:00
[강대석 시인·행정학박사]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한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들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고, 곤경에 처한 가족을 보면 내 가족도 저러면 어떨까 하고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인지상정이다. 인지상정은 법과 도덕에 앞선 인간 본연의 심성이다.

정도는 일정 수준을 뜻한다. 정도껏이라는 말은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뜻의 과유불급과 맥을 같이 한다. 아무리 온당하고 필요한 일이라도 일정 수준을 벗어나면 민심은 고개를 돌린다.

지난해 8월 말부터 연일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조국 장관 관련 수사가 검찰 인사를 계기로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사람의 장관 임명을 두고 이렇게 장기간의 수사와 다른 사건으로 확대된 예는 별로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지난 넉 달 동안 찬조(贊曺)와 반조(反曺)로 극명하게 양분되었다.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선 조국을 응원하는 검찰 개혁 집회가 토요일마다 열리고, 광화문광장에서는 조국을 구속하라는 야당과 태극기 집회가 쉬지 않고 열렸다. 세간에는 셋만 모이면 조국과 윤석열의 이야기였다. 내용은 누구 입에서 나오든 대동소이하지만 혹여 반대편이라도 한 명 있으면 가족 간에도 언성이 높아지기 일쑤였다. 이것이 지난 넉 달간의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다.

사소한 예지만 조국 사건 이후 나도 페이스북 친구를 몇 명 지워야 했다. 매일 페이스북에 내 생각과는 거리가 먼 글을 게시하고 태극기 집회의 주장을 올리는 그들의 행태가 비위에 거슬려서다. 서로 소통하며 즐겁게 지내자는 공간에서 괜히 그런 게시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사람이 살면서 쉽진 않겠지만 최소한 원한은 사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조그만 원한이라도 어느 때 비수가 되어 되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인에 대한 원한을 넘어 조직이나 단체에 대한 원한이라면 그 파고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젊었을 때 정조의 명을 받아 암행어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때 경기도 관찰사였던 서용보(1757~1824)의 비위 사실을 적발했다. 이로 인해 서용보는 관찰사에서 파직되어 잠시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정조가 죽은 다음해인 1801년 정약용이 신유옥사(辛酉獄事)로 구속되어 국문 결과 잘못이 없음이 밝혀졌지만 우의정(위관)이었던 서용보의 반대로 귀양을 가야 했다. 귀양살이 2년 후 수렴청정을 하던 정순대비가 정약용을 풀어 주라고 명했지만 좌의정 서용보가 다시 반대하여 풀려나지 못했다. 결국 서용보로 인해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57세이던 1818년 가을에 해배되어 이듬해 겨울에 조정에서 정약용을 다시 중용하려 했으나 또다시 서용보가 극력 반대하여 마지막 출사의 길마저 막히고 말았다. 서용보의 끝없는 앙심이 어느 사건을 보는 듯하다. 사가들은 서용보를 삼정승을 다 지냈지만 소인배였다고 평한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전격적인 인사로 그동안 이목이 집중되었던 일명 윤석열 사단은 해체되었다. 여러 말이 많지만 이러한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의 원인 제공은 윤석열 사단이 자초한 면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조국 사건을 조국 일가의 기소로 마무리했으면 여기까지는 안 왔을 터인데 너무 나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엊그제 새해 산행을 위해 무등산에 올랐다. 거기에서 만난 한 등산객은 묻지도 않은 말을 건네 왔다. “조국이가 죄가 없기는 없는 갑디다. 그렇게 털고 털어도 기껏 직권 남용이나 아들 시험 문제 풀어 준 것 갖고 기소헌 것 보믄, 즈그들은 자식 안 키운다요?” “남의 불행을 보면 가슴 아픈 것이 인지상정인디, 정도껏 해야 지라우”

산을 내려오면서 그분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인지상정과 정도껏이라는 말이 그렇게 크게 들린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