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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혹 전두환으로 통해 행불자 암매장 꼭 밝혀내야
2020년 01월 07일(화) 00:00
나의갑 광주전남언론인회 회장·전 5·18기록관장
광주는 1980년 봄으로부터 특별한 역사의 나이를 먹어왔다. 그게 5ㆍ18이고, 그새 40에 이르렀다.

5ㆍ18은 오작동 되고 있다. 일부 국민들 사이에 ‘폭도’가 멀쩡히 살아 있고, 작년 2월엔 국회서까지 ‘광주폭동’(자유한국당 이종명 국회의원의 발언)이 일어났다. 40년 전 음지에서 생산된 말들이 죽지 않고 유통되고 있다 함이다.

그 오래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1월3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 위원들(9명)이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묘지선언’을 했다. “국가 차원의 조사를 통해 진실을 확인하고 국민통합에 이바지하겠다”며, 진실규명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니 검찰수사니 국방부 과거사위 등으로 이어진 네 번의 진상조사가 그걸 교훈처럼 알려준다. 가해자인 전두환그룹(신군부) 쪽 ‘입들’이 5·18을 훼방 놓는 진술만 늘어놓았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광주는 상처만 덧났다.

잠시 감자를 생각한다. 땅위의 감자 줄기와 땅속의 감자 말이다. 줄기를 잡아당기면 줄레줄레 딸려 나오는 ‘5·18 감자’는 어디 있는가? 나는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을 그 감자로 지명한다. 그의 행적을 유의 깊게 관찰하다 보면 그가 사실상의 계엄사령관으로 닿아오는 때문이다. 이희성 대장의 검찰수사기록(1995년 12월12일 진술)이 그 양질의 증거다. 검사가 “그렇다면 진술인은 속칭 ‘바지’ 계엄사령관이라는 말인가요”라고 묻자 “12·12사건으로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의 요청에 의해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하고 이에 따라 계엄사령관이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전두환이 주도하는 군부에서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제 의사대로 참모총장을 한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라며 대뜸 ‘바지’를 수긍했다. 다른 사례들이 많지만, 이것만으로도 전두환을 계엄사령관으로 지목할 수 있다. 전두환이란 줄기 하나만 뽑아도 그 밑에 숨어 있는 집단발포 명령자, 지휘체계 이원화, 광주선택설 같은 핵심 진실들을 한 꿰미에 꿸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지금 껏 해온 가락으로 보아 전두환은 조사위에 호출되어도 ‘모름’이거나 ‘거짓’일 것이다. 거짓말 공작의 전범(典範)으로 인식되는 ‘전두환 회고록’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을 것이다. 그가 독창적 기법으로 지은 5·18을 퇴치하지 못한다면 구부러진 5·18을 다 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고, 묘수는 없나? 기하학에서 매우 중요한 건 ‘증명’인데, 그걸 차용하면 어떨까 싶다. 전두환의 5·18 행적이나 타인의 진술 가운데 ‘참’이 되는 것으로 인정된 것들을 한데 모아 연역적으로 추리하면 ‘전두환의 5·18’을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자기 혼자만 차고 있는 ‘5·18 비밀주머니’가 어디 한두 개일 것인가.

행방불명자-암매장은 떼어놓으면 사건 구성이 안 된다. 5·18이 끝나자 소문이 돌았다. 갱생원이 문을 닫아버렸고, 넝마주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행방불명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소문부터 조사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진상조사 품목에 오르지 못한 것도 있다. 편의대와 유언비어다. 그러나 이것처럼 중요한 게 없다. 그것들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할 경우 ‘광주폭동’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을 발견하는 자세론 미덥지 않다. 진실을 발명하는 조사태도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