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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삶’을 결심하는 그들
2019년 12월 24일(화) 04:50
[박승규 조대신문 기자]
“졸혼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주변 사람들에게 묻거나 상의하지 않았어요. 이외수의 아내로 존재했던 제가 이제는 저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에요.” ‘우먼 센스’에 실린 소설가 이외수의 아내 전영자 씨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지난 4월 이외수·전영자 부부가 결혼 생활 44년만에 졸혼을 선언함에 따라 졸혼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졸혼은 중장년층 부부에게 새로운 이혼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졸혼이란 법적 부부로서 혼인 관계는 유지하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결혼을 졸업한다’는 것이다. 이에 많은 부부들이 이혼 대신 졸혼을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황혼 이혼’이 급증했다. 통계청이 9월 발표한 ‘2019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고령층(만 65세 이상) 남성 이혼 건수는 총 8032건으로 전년 대비 16.7% 늘었다. 고령 여성의 이혼 건수도 4148건으로 전년(3427건)보다 21.0% 증가했다. 이는 전체 이혼 건수 증가율인 2.5%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으로는 이혼에 대한 인식 변화를 꼽을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유교주의적 사고에 따라 이혼을 꺼리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노년층의 가치관이 유하게 변하면서 이혼을 택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졸혼은 이혼과 다르게 현행 민법에서 규정되고 있는 개념은 아니다. 그러므로 졸혼을 한다는 가정 하에 보는 합의는 모두 법적인 효력이 없다. 즉, 복잡한 서류를 작성해 소송 절차까지 밟는 이혼과는 다르게 졸혼은 서로간의 신뢰를 필요로 하는 셈이다. 따라서 평소에는 독립적인 생활을 하다가도 집안의 대사 또는 자녀들의 일이 있을 때는 졸혼 이후에도 연락하며 서로 만날 수 있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오랜 결혼 생활 과정에서 누적된 배우자에 대한 실망감과 다양한 갈등이 표출된 사회적 현상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황혼 이혼 결정 과정에 관한 연구’ 논문(유순희·정민자, 2018)에서 저자는 “노년기는 결혼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시기로 볼 수 있으며, 이혼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졸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굳이 가정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각자의 ‘두 번째 삶’을 찾아 떠나는 선택이기에 이혼보다 비교적 덜 불행하게 다가온다.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지니고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았을 아버지들, 그런 남편을 내조하며 가정과 양육에 헌신하며 몸을 바쳤던 어머니들이 그동안 잊거나 포기하고 살았던 본인의 인생을 되찾을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졸혼은 긍정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긍정적인 시각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졸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은 결혼이 학교 졸업장 따는 것처럼 졸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혼의 미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졸혼을 선언함으로써 민법에서 규정하는 배우자와 자식에 대한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 하거나, 이혼이 아니므로 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할 수 없음을 노려 재산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편법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나는 그들이 진정 부모로서 부부로서의 책임감을 다했다면, 뒤늦게나마 ‘자신’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선택과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다만 그 선택이 편의상 각자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포장으로써 이뤄진 것이라면, 또는 다른 가족 공동체의 의견은 존중하지 않고 개인의 해방감과 자유만을 쫓은 결정이라면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