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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윤석민, 파란만장 현역 ‘마침표’
스프링 캠프 준비중 어깨 부상 극복 못하고 전격 은퇴선언
12시즌 398경기 77승 평균자책점 3.29…12경기 완투 중 완봉승 6회
팀·국가대표 에이스 활약…다음달 팬 초대 식사 대접·자선 행사 계획
2019년 12월 15일(일) 22:50
‘불운의 에이스’였지만 KIA타이거즈 윤석민은 “나는 행복한 선수였다”며 작별 인사를 전했다.

KBO리그 최고의 우완으로 손꼽히던 윤석민이 지난 13일 은퇴를 발표했다.

선동열과 함께 KBO리그 37년 역사에 두 번밖에 기록되지 않은 ‘투수 4관왕’ 윤석민은 MVP, 국가대표 에이스 등의 화려한 이력을 뒤로하고 부상으로 굴곡진 15년의 그라운드 인생을 마무리했다.

스프링캠프를 준비했던 윤석민은 “어깨 안쪽에 바늘이 꽂혀있는 느낌이다. 주사를 맞으면서 버텨왔는데 정상적인 투구가 어려운 상황이다”며 “캠프 가서 잘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좋지 않은 모습만 보일 것 같았다. 투수 최고참인데 이런 상황에서 후배들 앞에 서는 게 미안했다. 많이 고민하고 힘들었는데 막상 은퇴를 결정하니 마음이 편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2005년 2차 1라운드 지명으로 KIA유니폼을 입은 윤석민은 미국 진출과 부상으로 빠진 3시즌을 제외한 12시즌에서 398경기에 나와 77승(75패) 86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 3.29를 기록했다. 12차례 완투를 했고, 이 중 6경기는 완봉승으로 끝냈다.

선발 등판마다 ‘노히트 노런’을 기대하게 했던 윤석민은 “2008년 LG잠실전이 가장 생각난다. 6회까지 퍼펙트여서 7회만 넘기면 노히트노런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7회 2사에서 우익수 이종범 선배님이 공을 잡지 못했는데 안타가 기록됐다”며 “9회까지 노히트로 간 적도 있지만 그 경기가 유일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경기였다”고 회상했다.

2009 WBC 베네수엘라전 호투는 여전히 많은 야구팬들에게 회자되는 최고의 경기. 국제 대회에서도 윤석민은 에이스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했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불운’도 함께했다.

윤석민은 2007년 28경기에 나와 3.7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무려 18패를 떠안았다. 어깨 수술 전 마지막 등판이었던 2016년 4월 17일 광주 넥센전도 9이닝 2실점 완투패.

윤석민은 “최다패할 때 다른 투수들 4~5점 주고 승리투수가 되면 부럽기도 했었다(웃음). 수술 전 마지막 경기도 완투패였는데 그 때 어깨가 좋지 않았다. 수술을 생각하고 있던 때라서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또 팀 사정상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느라 투수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인 100승도 채우지 못했다.

4관왕과 함께 MVP를 이룬 2011시즌에는 선동열 감독 체제를 꾸린 구단의 반대로 포스팅 꿈을 접어야 했다. 2013시즌이 끝난 뒤 FA로 미국 진출의 꿈은 이뤘지만, 계약이 늦어지면서 2·3년 차 빅리그 보장권에 만족해야 했다. 또 비자 문제 등으로 시즌 준비가 늦어졌던 윤석민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하고 이 시즌이 끝난 뒤 지명 할당 됐다.

2011시즌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지만 가장 후회가 남는 지점이다.

윤석민은 “2011년에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경기 시작하면 점수를 뽑아줘서 힘든 경기가 별로 없었다”며 “이해 MVP경쟁(이대호 7관왕, 오승환 47세이브)이 치열했었다. MVP를 너무 받고 싶어서 시상식날 긴장했다. 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다”고 돌아봤다.

이어 “2011년에 미국에 안 간 게 많이 후회됐다. 그래서 2013년 성적이 좋지 못했지만 도전했다. 돌아보면 하늘에서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웃음). 비자도 늦어지고, 비행기도 안 뜨고 에이전트가 집도 구해놓지 않아서 초반에 트렁크를 끌고 다니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며 “결과는 실패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너무 간절했던 꿈이고, 도전이었다”고 언급했다.

매번 걸림돌이 있었지만 윤석민은 타이거즈 선수로 뛴 ‘행복한 선수’였다고 말한다.

윤석민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대학 진학을 걱정하던 선수였다. 3학년 때 키도 크고 힘이 붙으면서 프로에 오게 됐지만 사실 많은 주목을 받진 못했다. 내가 이 팀에 왔기 때문에 신인 때부터 경기를 뛸 수 있었다. 언제 2군 갈까 노심초사하고 무서운 선배들 사이에서 주눅도 들었지만 매일 행복했다”며 “또 이곳에 와서 이광우 코치님을 만났다. 코치님한테 많은 변화구를 배웠다. 가장 존경하고 감사한 분이다”고 말했다.

이강철 KT 감독과 김기태 전 감독도 윤석민에게는 고마운 은사. 힘든 시기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조범현 감독의 ‘말’도 잊지 못한다.

윤석민은 “2010년에 손가락도 부러지고 성적이 많이 없었는데 조범현 감독님께서 ‘넌 그래도 윤석민인데 가서 도와주라’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가자고 하셨다. 그게 너무 감사했다. 결승전에서 (류)현진이가 4이닝 3실점 하고 내려갔는데 내가 남은 이닝을 던져서 (양)현종이 군대 면제 시켜줬다(웃음). 그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금메달과 함께 해피에딩으로 대회가 끝났지만 윤석민은 대만과의 예선 첫 경기에서 엔트리 누락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팬들의 뜨거웠던 응원은 윤석민에게 큰 힘이었고 이제는 미안함이 됐다.

윤석민은 “2013년 부상에서 돌아와서 경기에 나가는데 목동에서 팬들이 너무 뜨겁게 반겨주셨다. 당시 소름이 돋았다. 표현은 안 했지만 눈물 날 뻔했다. 고마운 순간이 많았다”며 “선발 등판 때는 전날부터 먹는 것도 신경 쓰고 많이 예민했다. 팬들에게 더 좋은 모습 못 보여드린 게 죄송하다”고 언급했다.

팬들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 윤석민은 내년 1월 팬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함께 자선 행사도 할 계획이다.

야구를 내려놓은 윤석민은 이제 평범한 남편, 아빠로 돌아간다. 마지막에 달았던 백넘버 24번은 자신과 아내, 큰 아들 생일 ‘24일’을 뜻했다. 윤석민은 특별한 계획 없이 일단 가족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윤석민은 “아들한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도 싶었는데 자신이 없었다. 나중에 커서 아빠가 이런 선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다른 안 좋은 것들도 보게 될까 봐 빨리 평범한 아빠로 가기로 했다”며 “정말 많은 사랑 받았다. 이 사랑 잊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언급했다.

/김여울 기자 wo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