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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명혜영 광주시민인문학대표·문학박사] ‘82년생 김지영’ 신드롬
2019년 11월 08일(금) 04:50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 씨, 딸 정지원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 씨는 LT 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 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 씨는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원 양은 돌이 막 지난 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 동안 다닌다.”(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프롤로그에서)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모티프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누구나의 ‘일상’에서 가져왔다. 곳곳에 시적인 표현이 있어 예술적 맛을 주는 것도 아니고, 철학적 은유로 해석에 어려움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독자가 ‘도대체 이 문장은 뭘 얘기하려는 걸까’라고 주춤거릴 필요도 없다. 그냥 나의, 내 어머니의, 또 우리 아버지들의 일상을 담담히 그린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다. 그 평범함을 단지 여성의 시점에서 그렸다는 점이 의도라면 의도다.

그런데 이 소설이 한국의 십대부터 삼십대 남녀 사이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100만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82년생 김지영’이지만 남성들에게는 ‘불온서적(不穩書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단지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성 연예인들은 악의적 댓글에 시달려야 했고, 부모 형제간에도 불화의 불씨로 화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82년생 김지영’을 텍스트로 진행된 인문학 강좌에서 “아들의 강한 어택”을 증언하신 어머니들도 있었다.

이런 문제(?)의 소설이 2019년에 영화화되었다. 영화는 개봉되기도 전에 평점 테러를 당하는 등, 여러 정황이 있었지만, 어찌됐건 ‘82년생 김지영’은 현재 절찬리 상영 중이다. 특이한 점은 영화를 보기 전과 본 후 의 남성들의 평점이 상반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민주당의 청년 남성 대변인이 영화평을 썼다가 여성들의 항의로 철회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는 칼럼에서 “초등학교 시절 단순히 숙제 하나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스윙 따귀를 맞고, 스물둘 청춘에 입대하여 갖은 고생 끝에 배치된 자대에서 아무 이유 없이 있는 욕 없는 욕은 다 듣고, 키 180 이하는 루저가 되는 것과 같이 여러 맥락을 알 수 없는 ‘남자다움’이 요구된 삶을 살았다“고 토로하며 ‘82년생 장봉화’를 만들어도 똑같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장 대변인은 ‘김지영의 여자다움’과 ‘장봉화의 남자다움’이 요구되는 상황을 동일선상에 놓고 본 것이다. 분명한 오독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이 지점에서 혼동하는 것 같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자다움이 요구되는 것은 차기 권력자로서의 수양을 위한 마땅한 과정이다. 반면, 여성다움은 오로지 가부장제의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며 사회가 부과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본질이 다르다. 결국 장 대변인의 젠더 감수성은 강한 의심을 받으며 퇴장했다.

‘82년생 김지영’을 장 대변인처럼 읽으면 왜 안 되는지를 모든 한국의 남성들이 성찰했으면 한다. 섣불리 자신의 답을 내놓기 전에 여성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녀들의 입장에 서서 숙고해 이해한 후 언급하는 섬세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82년생 김지영’은 현재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10만 부 이상의 판매 부수를 올리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2000년 초반 이후 뜸해졌던 페미니즘이 다시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도 그간의 페미니즘은 강한 저항 운동으로서의 이미지가 컸다. 하지만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평범, 일상’을 모티프로 한 ‘82년생 김지영’은 일상 속에서의 차별을 재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녀들은 다시 ‘작아서 보이지 않았던, 먼지 같은 페미니즘’을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페미니즘 소설이 일본 여성들을 각성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다음 수순은 한일 여성들이 함께 연대해 ‘여성이라는 아웃사이더’ 만들기를 멈추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