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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중 현 광주 증심사 주지] 제주에서
2019년 11월 08일(금) 04:50
깊어가는 이 가을에 제주를 다녀왔다. 제주의 사계가 모두 아름답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발닿는 곳마다 억새가 일렁이는 가을이 단연 으뜸이다. 이번엔 증심사 신도들과 함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지닌 제주 불교를 답사하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답사의 첫째날은 제주 4·3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다. 제주 그 어디를 가든 4·3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제주 4·3은 해방 이후 첨예한 좌우 대립의 현대사가 낳은 지울 수 없는 비극이다. 제주의 이 엄청난 비극은 근본적으로 좌우의 대립 때문이지만 제주가 망망대해에 홀로 고립된 섬이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섬이라는 폐쇄된 지형이 주는 특수성은 영국과 일본에도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일찍 근대적 의미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도입하였다. 영국식 민주주의의 특징은 3C로 요약된다. 상식(Common Sense), 대화(Communication), 타협(Compromise)이 그것이다. 상식에 입각해서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 영국식 방식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고립된 섬나라에서 다른 한 쪽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씨를 말리는 수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하고, 이마저 안되면 다수결에 따를 수 밖에 없다.

같은 섬나라인 일본은 영국과 달리 개인이 집단에 복종하는 방식이다. 유생의 나라였던 조선과 달리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일본을 지배한 세력은 무사들이었다. 일본의 백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숨죽이며 살거나 아니면 저항하다 무사의 칼에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섬나라인데다 오랫동안 무사가 나라를 지배한 것까지 더해져서 일본 특유의 전체주의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일본인의 정치적 무관심은 이런 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은 영국식 민주주의로, 일본은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섬나라 안에서 서로 화합하며 살았다. 그러나 70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좌우 대립은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당시 제주 인구 10%가량의 양민을 학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제노사이드는 끔찍한 집단 학살을 동반하는 인종 청소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같은 민족이 같은 민족을 향해 이념의 차이를 빌미로 집단 학살을 자행하는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 제주에서 벌어졌다. 영국식도 일본식도 아닌 최악의 사태가 ‘환상의 섬, 제주’에서 벌어진 것이다.

영국식의 민주주의가 통용되려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이 전제되어야 한다. 주체적인 개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는 영국식의 민주주의가 만개할 수 있는 토양이다. 개인주의는 신이 지배하던 중세를 극복하며 탄생했고,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개인주의가 사회적으로 발전된 형태이다. 그런 까닭에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군중들 속에서 민주주의는 성장하기 힘들다. 각종 언론 매체에 휘둘리는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책임지지 못한다. 일본은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전체주의와 그로 인한 정치적 독재가 일본의 침몰에 한 몫을 한다는 데 많은 학자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일본과 다르게 우리 사회는 뜨겁게 외치고 숨 가쁘게 달려 여기까지 왔다. 활발하고 격정적이나 배려와 존중이 부족한 것이 우리의 문제다. 정치인부터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어떤 이슈이든 금새 갈등과 대립의 양상으로 전개되곤 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적대적인 대립이 깊어지고 있다. 해방 직후의 첨예했던 좌우 대립을 연상케 한다. 그때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물론 겁 많은 자의 지나친 노파심이리라.

중산간의 어느 한적한 도로를 지나는데 버스 기사님이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여기가 예전엔 다 마을이었어요. 지금은 흔적도 없지요. 이렇게 사라진 마을이 제주에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중산간의 마을들처럼,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너무 쉽게 잊고 있다. 제주의 4·3도 광주의 5·18도 모두 당대에 벌어진 일들이다. 같은 민족이 같은 민족을 집단 학살한 역사를 지닌 민족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그것도 20세기 들어 두 번씩이나.

어리석은 자는 누구의 잘못인지 누가 옳은지 따지려 든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무엇이 문제인지 따뜻한 시선으로 차분하게 살핀다. 배려와 존중은 개인주의의 실천 윤리이자, 하느님의 사랑이며, 부처님의 자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