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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붉어질 때 태풍 몇 개·땡볕 몇 날?
(288) 홍시
2019년 11월 07일(목) 04:50
오치균 작 ‘감’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장석주 작 ‘대추 한 알’>

어찌 대추뿐이랴. 이 가을 햅쌀로 밥을 짓거나 막 나무에서 땄다는 과일을 먹을 때마다 저 시에서처럼 땡볕과 무서리와 태풍 몇 개가 함께 떠오른다. 지난 주말 시골에 들러 감 따면서도 이 모든 비바람을 이겨낸 나무와 열매를 보며 감탄했다. 타파, 링링 등 가을 태풍 3개에도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려있었던 대봉감. 그 대봉이 잘 익어 홍시 되는 날, 홍시 한 알 다 먹고 나면 거센 시련을 견뎠던 안간힘이 그대로 내게로 와 힘이 되어줄 것만 같다.

오치균작가(1956~ )의 ‘감’(2010년 작)은 우리나라 시골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저마다의 감에 대한 추억을 생각나게 한다. 눈부시게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 향해 뻗어나간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선홍빛 감은 늦가을의 서정을 참으로 운치 있게 색칠한다. 잎사귀 모두 떨군 갈색 나뭇가지와 선홍색 감의 대비된 색조, 스산하면서도 찬란한 화면이 금방이라도 눈앞에 펼쳐진 듯 사실적이다.

오치균작가는 서울과 뉴욕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활동을 해온 작가로 거리의 노숙자를 그린 ‘소외된 사람들’ 연작을 비롯, 뉴욕, 강원도 사북, 산타페, 감과 봄을 주제로 사람의 이야기와 삶 속에서 마주하는 주변 환경을 서정적으로 작업해 왔다. 아무리 무겁고 어두운 무채색의 풍경일지라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독특한 서정과 감수성으로 따뜻하게 다가온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실제 작가 특유의 마티에르는 붓이 아닌 손끝으로 탄생한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관·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