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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배동진 전남도 법무담당관] 의사는 누구 편일까?
2019년 11월 06일(수) 04:50
정부는 중증 환자나 움직이기 힘들어서 병·의원을 찾을 수 없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의사, 한의사가 직접 찾아가 치료하는 ‘왕진 시범 사업’을 빠르면 12월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재택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료인들과 서비스의 제공 및 절차, 법적 책임, 수가 문제 등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채 정부가 일방으로 시범 사업을 밀어 붙이고 있다며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늘날 한국의 의료 정책은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일환으로 시작돼 1984년 알렌이 권세가 민영익을 치료한 것을 계기로 제중원 설립으로 이어졌다. 조선을 침탈한 일제는 1914년 의사 면허 제도를 시행하면서 드러내놓고 한국 의학을 탄압·멸시하였다. 미 군정 시기와 박정희 정부까지 수천 년 동안 이어오던 한국의 전통 의료 정책을 말살하는 데 혈안이 되어 이젠 서양 의술이 굳건하게 지배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 서구 의료 정책을 도입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전통 의술은 ‘환자 중심’의 ‘왕진 제도’로 의료인들이 환자를 찾아가 치료하였다. 한의원이 마을마다 있는 것이 아니었고, 아픈 사람이 한의원까지 가서 치료받는 일은 힘든 일이므로 의료인이 환자를 방문, 치료하거나 처방전 또는 약을 지어주는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했던 것이다.

오늘날 의료 체계는 아픈 사람이 병·의원을 찾아 가야만 환자를 치료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검사 기기와 치료 수단, 의료진을 갖추고 있는 병·의원이기에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게 효율적인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정부가 밝힌 것처럼 ‘중증 환자나 움직이기 힘들어서 병·의원을 찾을 수 없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의사, 한의사가 직접 찾아가 치료하는 왕진 시범 사업’을 하겠다는데 이에 반대하는 모양새가 어쩐지 떼를 쓰는 것만 같다.

의사가 아픈 사람을 찾아가 치료해 주는 일이 당연하건만 현재의 서구식 의료 체계에선 아픈 사람이 의료인이나 의료 시설을 찾아가 치료받는 형태로 바뀌었다. 어느 방법이 좋으냐는 건 환자 중심인지 아닌지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정부의 ‘왕진 시범 사업’을 시행하면서 문제점이 있으면 보완해 가면 되는 일이지 시작도 하기 전에 반대부터 하면 도대체 의사·한의사들은 환자가 아니라 누구의 편이라는 말인가? 환자들을 불철주야 치료하는 의사·한의사들의 힘든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오죽했으면 의술을 배우는 예비 의사들이 힘든 외과 분야 등을 기피하는 현상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사·한의사들의 환자를 낫게 해주려는 숭고한 마음과 인술은 고귀하기까지 하다. 이런 고귀한 희생 정신으로 아픈 사람에게 건강을 되찾아주는 의료인들이야 말로 환자들에겐 생명의 은인이기에 한국사회에서 하이 클래스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의료인들이라면 부와 명예를 거머쥔 계층인데,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 의료인들이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왕진 시범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반대해서야 되겠는가? 환자 중심의 의료인이라면 앞장서서 나서야 할 일에 현실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거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중증 환자 등을 위한 시범 사업은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를 의료인이 찾아가서 진단하고, 필요하다면 병·의원으로 옮겨 치료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환자를 위해 정부와 의료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것이지 무조건 반대를 하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