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쌈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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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쌈의 나라’다. 한국 음식이 가진 고유한 특징 가운데 퍼포먼스 측면에서 가장 구분되는 것은 쌈을 싸서 먹는 행위다. 한국의 쌈 문화는 외국인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2006년 기내식으로 ‘영양쌈밥’을 출시해 국제기내식협회(ITCA)가 주관하는 머큐리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미국 LA의 삼겹살집에서 만난 두 명의 백인 여성은 식탁 위에 있는 다양한 음식을 각자의 기호에 따라 야채로 싸 먹는 행위가 무척 흥미롭다고 했다. 그녀들은 쌈을 두고 ‘DIY FOOD’라고 부르며 개성 강한 미국인답게 저마다의 새로운 조합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국에서 쌈은 한국 식문화의 원형이다. 각종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잎채소에 곡물을 싸 먹는 쌈은 영양 면에서도 매우 탁월한 선택이다. 쌈은 음식을 먹는 형식이기도 하거니와 젓가락·숟가락에 이은 제3의 도구의 역할을 했다. 농업이 근간이었던 우리 민족에게 쌈은 복을 구하는 기복의 의미까지 더해졌다. 자연에서 얻은 먹거리를 싸는 것은 복을 싸는 것이라 여기며 복쌈이라 불렀다. 그래서 첫술은 언제나 쌈을 싸서 먹는 관습이 있었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한 해의 복을 기원하며 김이나 취에 밥을 싸서 먹는 풍속이 있었다.
터키의 되네르케밥, 멕시코의 타코, 프랑스의 크레페와 갈레트 등 쌈과 유사한 식문화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스케일 면에서 한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한국은 우선 들과 밭에서 나는 모든 푸성귀를 쌈 채소로 활용한다. 땅에서 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김, 미역, 다시마, 곰피 등 바다에서 채취한 해조류까지 쌈으로 먹는다.
이외에도 전복을 얇게 저며서 쌈을 싸고(전복쌈), 육포로 쌈을 싸고(포쌈), 밀전병으로도 쌈을 싼다(밀쌈). 근래에는 로메인, 겨자, 비타민, 치콘, 버터헤드레터스, 케일, 로즈, 치커리, 비트잎, 라디치오, 레드잎 등 외국에서 샐러드용으로 사용되던 품종을 들여와 쌈 채소에 적합하도록 개량해 거침없이 쌈을 싸 먹고 있다.
포용력이 강한 한국의 쌈 문화는 뜻밖의 이종교배를 낳기도 한다. 한국에서 명절 선물로 ‘스팸’(SPAM)을 주고받는 건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지난해 스팸 판매액은 4100억 원. 이 가운데 60%가 명절 기간 선물 세트 판매에서 올리는 매출이라고 한다. LA타임즈, BBC, 뉴욕타임즈 등 유수의 언론도 한국의 스팸 선물 문화를 기사로 다뤘다.
그런데 스팸을 폄하하는 한국인도, 스팸의 인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도 간과한 사실이 있다. 음식의 운명은 탄생과 전파보다 어떤 환경에서 정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스팸의 운명은 2002년부터 달라졌다. CJ제일제당은 김원희, 에릭, 한예슬 등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배우들을 스팸 광고모델로 기용한다. 그리고 스팸과 쌀밥의 만남을 강조하며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기막힌 카피를 선보였다. 뽀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얇게 저며 구운 스팸에 싸 먹는 장면은 한국인의 정서를 관통했다.
정확히 이때부터였다. 돼지고기의 부산물로 만든 가공육에 불과했던 스팸은 순식간에 한국 식문화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밥, 김치, 스팸이라는 삼위일체는 전국의 수많은 일인 가구와 자취생에게 구원의 메시지가 되었다. 그 메시지는 70~80년대 최고의 도시락 반찬이었던 ‘분홍 소시지’의 추억을 지워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스팸은 더 이상 캔에 든 값싼 햄이 아니다.
맛의 도시 광주가 낳은 향토 음식 가운데 외지인이 보기에 가장 독특한 음식은 ‘상추튀김’이다. 길거리 분식집에서 파는 값싼 튀김을 한입 크기로 잘라 상추에 싸서 양파와 청양고추를 곁들여 먹는 상추튀김은 너무 어처구니없어 오히려 독특한 음식이다. ‘튀김쌈’이라는 당연한 조합 대신 ‘상추튀김’이라는 모호성이 오히려 상추튀김의 유명세를 부채질했다.
내가 아는 광주 출신의 한 편집자는 상추튀김을 생각하면 늘 최루탄 냄새가 난다고 했다. 충장로 일대에 최루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던 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던 그 연배에게 남아 있는 특별한 기억이다. 한국의 쌈은 그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서사를 품고 있다. 심지어 쌈에 곁들이는 양념 이야기는 미처 꺼내지도 못했다.
<맛 칼럼니스트>
아시아나항공은 2006년 기내식으로 ‘영양쌈밥’을 출시해 국제기내식협회(ITCA)가 주관하는 머큐리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미국 LA의 삼겹살집에서 만난 두 명의 백인 여성은 식탁 위에 있는 다양한 음식을 각자의 기호에 따라 야채로 싸 먹는 행위가 무척 흥미롭다고 했다. 그녀들은 쌈을 두고 ‘DIY FOOD’라고 부르며 개성 강한 미국인답게 저마다의 새로운 조합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외에도 전복을 얇게 저며서 쌈을 싸고(전복쌈), 육포로 쌈을 싸고(포쌈), 밀전병으로도 쌈을 싼다(밀쌈). 근래에는 로메인, 겨자, 비타민, 치콘, 버터헤드레터스, 케일, 로즈, 치커리, 비트잎, 라디치오, 레드잎 등 외국에서 샐러드용으로 사용되던 품종을 들여와 쌈 채소에 적합하도록 개량해 거침없이 쌈을 싸 먹고 있다.
포용력이 강한 한국의 쌈 문화는 뜻밖의 이종교배를 낳기도 한다. 한국에서 명절 선물로 ‘스팸’(SPAM)을 주고받는 건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지난해 스팸 판매액은 4100억 원. 이 가운데 60%가 명절 기간 선물 세트 판매에서 올리는 매출이라고 한다. LA타임즈, BBC, 뉴욕타임즈 등 유수의 언론도 한국의 스팸 선물 문화를 기사로 다뤘다.
그런데 스팸을 폄하하는 한국인도, 스팸의 인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도 간과한 사실이 있다. 음식의 운명은 탄생과 전파보다 어떤 환경에서 정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스팸의 운명은 2002년부터 달라졌다. CJ제일제당은 김원희, 에릭, 한예슬 등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배우들을 스팸 광고모델로 기용한다. 그리고 스팸과 쌀밥의 만남을 강조하며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기막힌 카피를 선보였다. 뽀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얇게 저며 구운 스팸에 싸 먹는 장면은 한국인의 정서를 관통했다.
정확히 이때부터였다. 돼지고기의 부산물로 만든 가공육에 불과했던 스팸은 순식간에 한국 식문화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밥, 김치, 스팸이라는 삼위일체는 전국의 수많은 일인 가구와 자취생에게 구원의 메시지가 되었다. 그 메시지는 70~80년대 최고의 도시락 반찬이었던 ‘분홍 소시지’의 추억을 지워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스팸은 더 이상 캔에 든 값싼 햄이 아니다.
맛의 도시 광주가 낳은 향토 음식 가운데 외지인이 보기에 가장 독특한 음식은 ‘상추튀김’이다. 길거리 분식집에서 파는 값싼 튀김을 한입 크기로 잘라 상추에 싸서 양파와 청양고추를 곁들여 먹는 상추튀김은 너무 어처구니없어 오히려 독특한 음식이다. ‘튀김쌈’이라는 당연한 조합 대신 ‘상추튀김’이라는 모호성이 오히려 상추튀김의 유명세를 부채질했다.
내가 아는 광주 출신의 한 편집자는 상추튀김을 생각하면 늘 최루탄 냄새가 난다고 했다. 충장로 일대에 최루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던 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던 그 연배에게 남아 있는 특별한 기억이다. 한국의 쌈은 그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서사를 품고 있다. 심지어 쌈에 곁들이는 양념 이야기는 미처 꺼내지도 못했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