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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혁 시인] 지난 추석의 기억
2019년 10월 16일(수) 04:50
귀뚜라미 소리가 짙어지더니 단풍이 든다. 세상이 이리 시끄러운데도 계절은 소리 소문 없이 가고 있다. 이제 낙엽이 켜켜이 쌓이면 가을의 아름다운 쇠락이 또 한 번 우리를 지난 시절로 이끌 것이다. 낙엽 날리는 풍경. 나뭇가지에 붙은 마지막 이파리의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 이 계절이 오면 문득 가슴에 푸른 등 하나 켜진다. 과거가 어제 일처럼 분명해지고 지난날의 잘못은 저문 날의 해거름처럼 뚜렷하다.

추석날 저녁, 양떼구름 속에서 능금처럼 빛나던 달이 불쑥 생각났다. 나와 아들은 그 달을 손가락질하며 아름답다고 말했다. 아마 마음 속으로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섰으리라. 오래도록 그날 밤의 달을 기억해 그날처럼 취기가 있는 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면서 따뜻한 온기로 마음을 적시면 좋겠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지난 추석 말로만 듣던 역귀성을 했다. 역귀성이 내게 일어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쩌다가 국민 4.8%의 행렬에 끼어들었다.

추석이 가까워지자 아내는 아이들의 수고로움을 이야기했다. 안 된다는 말에 두 사람 모두 할 일이 없는 ‘백수’라는 걸 강조하더니, 내려오는 교통편 때문에 두 아들이 의견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고까지 얘기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미리 성묘를 하고 어머니께 용서를 빌었다. 어머니는 은혜와 헌신의 다른 이름이었으니 나는 또 내 두 자식을 업어 키워 주신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에 기대어 어처구니없게도 내 스스로를 용인한 것이다.

도착한 경기도의 거리는 거꾸로 한산했고 여유로움이 넘쳤다. 모처럼 아이들과 당구를 쳤다. 온 식구가 함께 저녁 식사를 했고 아이들에게 할머니를 얘기하게 했다. 아이들은 할머니와의 에피소드를 진지하게 떠올리더니 나중에는 경건해졌다. 옛일들이 무척 소중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며 오랜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삶이란 이처럼 뜬금없이 아름다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차를 몰고 내려왔다면 심야 시간에나 도착했을 것이고 우리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애를 태웠을 것이다. 피치 못해 결정한 역귀성이었지만 거기엔 생각지 못한 또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추석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난 후 창밖의 텅 빈 운동장을 보며 부모님을 상념 하다가 근교에 계시는 장인과 장모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장인과 장모님을 생각해낸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아이들도 단박에 동의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여러 번에 걸쳐 처남과 통화했고 드디어 외진 산속에 누워계시는 두 분을 뵀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뵌 아내의 모습에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아내는 내려오는 길, 내 손을 잡아주었다.

저녁에는 둘러앉아 소주를 마셨고 나중에는 소주가 부족해 큰 아이와 술을 사러 나왔다. 취기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태풍이 지난 자리였는데도 흐렸던 하늘은 간데없고 눈부신 만월이 구름 속에서 꽃처럼 피어나 있었다. 달을 보며 우리 부자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언제 불렀는지 기억할 수도 없는 아들의 이름을. 취기가 아이에게 그런 다정(多情)을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 보지 못 한 길처럼’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삶은 언제나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을 통해 다른 길을 간다. 결국 다른 길은 다른 풍경을 만든다.

다른 생각이 더욱 풍성해지는 가을, 가을이 깊어간다. 늙은 참나무 고목 아래서 턱을 괴고 흩날리는 낙엽을 봐야겠다. 세상이 하 수상하지만 그것은 그 나름으로 흘러가게 두고 나는 가족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석상처럼 꼼짝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러다 불현듯 어머니를 기리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 다른 선택이 마음에 들기는 하셨을까? 가을 달빛 아래 개망초 흰 꽃잎들이 너무도 눈부시다.